친 서방 성향의 개혁 정책을 추진해 온 조란 진지치(50) 세르비아 총리의 암살로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가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됐다.전문가들은 세르비아의 권력 공백에 따른 정정 불안 및 개혁파와 민족주의 노선의 갈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이를 계기로 지난 달 세르비아와 느슨한 국가연합 관계를 선언한 몬테네그로의 독립 운동과 코소보의 세르비아계 분리주의 움직임이 촉발돼 발칸 전체의 안정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진지치 총리의 암살로 세르비아는 정치 권력의 진공 상태에 빠졌다. 최근 3차례의 대선에서 투표율 저조로 당선자를 내지 못한 세르비아는 현재 대통령이 공석이어서 진지치 총리가 실질적인 1인자였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케네디'로 불릴 정도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온 진지치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도 없는 상황이다. 영국 BBC 방송은 진지치가 2001년 1월 총리에 취임한 뒤 권력 유지를 위해 반대파는 물론 측근 중에서도 거물급 인사들을 견제해 후계자가 될 만한 '인재 풀'이 바닥난 상태라고 전했다.
2000년 10월 진지치와 함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연방 대통령을 축출한 공신인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는 마피아 결탁설 등으로 세르비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대통령 대행을 맡고 있는 나타샤 미치치 의회 대변인은 진지치가 기용한 허수아비 인사의 대표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실시될 총선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권의 분열이 불가피하게 됐다. 현재 세르비아 정부는 진지치 총리가 이끈 민주당(DS)을 비롯해 저마다 색깔이 다른 10여 개의 군소정당들로 구성돼 있는데, 진지치라는 인물이 사라진 뒤에도 연정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이 같은 정치 불안을 틈타 밀로셰비치의 퇴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민족주의 세력과 친서방파 사이의 분쟁도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민족주의 세력은 밀로셰비치를 유엔 국제전범재판소에 넘겨주는 대가로 서방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 등 진지치의 실용주의적 친 서방 정책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진지치 암살의 배후가 민족주의파와 연계된 범죄단체들이라는 추측이 나돌면서 양측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신유고연방 분리 문제도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공화국은 지난 달 초 3년 안에 완전 분리독립한다는 계획 아래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을 창설, 외교, 국방 등 일부 분야만을 연합 정부가 관장키로 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의 정정 불안을 틈타 분리독립을 시도할 수도 있다. 몬테네그로는 당장의 분리가 발칸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유럽연합(EU)의 강한 반대로 즉각적인 독립을 포기한 상태이다. 또 발칸의 대국에서 인구 1,000만의 소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세르비아의 차기 수장이 연방분리안을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을 경우 몬테네그로의 반발로 발칸 지역에서 또다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마저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암살로 인한 혼란이 세르비아 내 코소보 지역의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주민들 사이의 충돌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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