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TV로 생중계된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이야기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처음부터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지만, 역시 후유증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과 평검사들이 처음 공개적으로 대화를 하고, 토론공화국을 만들기를 희망하는 대통령이 대화당사자로 직접 나선 점에 큰 의미가 있지만 효과는 의문이었다. TV라는 매체의 속성과 생방송이라는 점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도 발생할 수 있었다.우선 검찰인사가 대통령과 검사들이 토론으로 해결할 사안이었는가 하는 점부터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은 최종 인사권자이며 검사들은 인사대상자들이다. 인사의 방법과 내용에 관해 입장이 다른 당사자들의 대화는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다툼이 되기 쉬웠다. 대통령은 설득하고 검사들은 반발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리 배치를 비롯한 대화형식에 대해서도 실랑이가 있었다. 검사들이 대통령의 형문제와 대통령이 전화를 건 사실까지 거론하며 작심한 듯 폭로를 하고, 대통령은 불쾌감과 모욕감을 표현하며 흥분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전달된 것도 보기 좋지 않았다.
토론이 끝난 뒤에는 버릇없는 검사들에 대한 반감과 함께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다리를 꼬고 앉았다고 강금실 장관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강 장관을 칭찬하는 팬클럽도 결성됐다. 노 대통령은 12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대행을 만났을 때 "검사들이 작전을 잘못 짜서 좋은 기회를 놓친 것같다. 결과적으로 내가 덕을 본 것같다"고 말했지만, 모두가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토론은 윈-윈이 아니라 양패구상(兩敗俱傷)이었다. 노 대통령은 토론결과에 대해 "검찰은 이번에 꽉 쥐었다"는 말도 했다. 검사들이 '토론의 달인'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데 대해 대통령이 모욕감을 느꼈듯이 검사들이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이다. 꽉 쥐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파악이며 다른 말로 하면 장악이다.
이번 토론으로 토론수요가 많아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갈등이 다양한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해당사자들은 이제 대통령과의 토론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응하다 보면 장관과 총리는 허수아비가 되기 쉽다. 국정의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의 현장출동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토론 다음 날 재경부 업무보고는 토론과정까지 공개하려다가 취소됐다. 검사들과의 토론의 영향이라는 보도와 달리 그 행사 이전에 결정된 방침이라지만, 노 대통령의 당초 생각과 달라진 점이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시절에 "정부가 출범하면 정책 입안단계부터 거론된 문제를 국무회의에서 공개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혼선이 생기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입안단계에서 정보가 새나간 사안의 정책결정과정을 그대로 전달하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인쇄매체보다 방송매체, 그보다 인터넷매체를 더 선호하고 신뢰하는 이유도 발언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매체는 부분적 인용과 편집을 통해 자의적 보도를 해 오보가 많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노 대통령도 말했듯이 수평적 리더십을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가 보장돼야 하는 토론에서는 특히 그렇다. 토론은 토론을 부르고 논란은 논란을 키운다. 노무현 정부와 같은 디지털·인터넷세상의 특성이다. 그런 경향이 공정한 여론 조성과 건전한 합의 도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사안별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그에 걸맞은 형식을 갖춰야 할 것이다. 토론의 대상과 주제를 선별할 것, 공개 비공개 여부를 편의의 잣대로 결정하지 말 것, 대통령이 쉽게 나서지 말 것 등을 강조하고 싶다.
임 철 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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