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손모(50)씨는 지난해 9월 W은행으로부터 '신용불량정보 예정통지서'를 전달받고 억울한 마음에 바로 금융감독원에 금융분쟁조정신청을 제기했다. 2000년 은행에서 대출받은 2,000만원을 1년 내에 모두 갚았지만 깜박했던 이자연체료로 남은 30여만원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사실에 정확한 자금내역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손씨에게 돌아온 것은 "분쟁조정 신청만으로는 신용불량 등록을 막을 수 없다"는 회신과 함께 신용불량자 확정통보 뿐이었다.유명무실 분쟁조정 절차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신용불량자 구제 제도의 미비와 금융기관이나 감독기관의 일률적인 법적용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억울한 사정으로 금융분쟁 조정신청을 하거나 명의를 도용한 사례 등 사유가 분명할 경우 탄력적인 법적용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용정보관리규약'에는 30만원 이상을 연체해 신용불량자 대상이 되더라도 사유발생 90일까지는 등록유예가 가능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금융기관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거나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한 기업에 대한 특례 등에만 적용되고 일반인이 분쟁조정 신청을 한 경우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일부 카드사들은 "분쟁조정신청을 한 경우 등록유예 조치를 해 선의의 피해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은행연합회 조봉규 차장은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고 신용등록을 보류시키면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등록유예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명의도용 신용불량자도 나몰라라
친구에게 신용카드를 빌려줬다 신용불량자가 된 회사원 최모(45)씨는 억울한 사연을 은행에 호소했지만 "당신의 사정일 뿐"이라며 매몰찬 답변만 들어야 했다. 최씨는 친구가 사용한 신용카드 대금 780만원과 연체이자까지 모두 갚고 친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카드를 도용한 친구가 변제책임이 있다'는 법원결정문까지 받아냈지만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당분간 금융거래를 전혀 할 수 없게 됐다. 현행법상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 등록 후 90일 이내에 연체금을 모두 상환하면 즉시, 90일∼1년이내에 상환하면 1년 이후, 1년을 초과해 상환하면 2년 이후에는 기록이 삭제된다. 하지만 명의도용 등의 경우 자신이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고 처리를 하려면 대개 3개월이상 걸려 억울하게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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