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 5년째를 맞은 사외이사 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더구나 새 정부 출범이후 주요 기업들이 전직 고위 관료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어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재벌 그룹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12일 SK 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에 대해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오너의 전횡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전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고위관료 영입 경쟁
한국가스공사가 최근 진념 전 경제부총리를 영입키로 한데서 알 수 있듯 각 기업의 사외이사로 가장 인기가 높은 직종은 전직 고위 관료. 또 국세청 관계자, 법조계 인사들도 대거 사외이사로 진출하고 있다. KTB 네트워크는 유희열 전 과기부 차관을 새로 선임했고, 이 달초 출범한 LG 지주회사 (주)LG도 김용진 전 과학기술부 장관과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을 영입했다.
삼성 계열사는 최근 전직 장관 및 지방국세청장, 국무조정실장 등을 대거 영입,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가 대법관 출신의 정귀호 변호사, 삼성물산은 안병우 전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삼성전기는 법무장관을 지낸 송정호 변호사를 영입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이 달초 LG 생활건강 사외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11일에는 KTF로부터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 등 여러 기업으로부터 동시에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새 정부의 개혁 칼날이 날카로워지면서 각 기업이 '일상적 로비'에 그쳤던 대관업무를 '비상시 로비'로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사외이사를 통해 정부와 대화 채널을 마련하는 한편, 경제정책과 기업정책을 파악하는데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제도적 개선책
B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회사측이 갑자기 연락을 해 와 이사회에 갔더니 안건을 살펴볼 틈도 없이 사인을 요구하더라"고 말했다.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1년 각 기업의 사외이사 이사회참석률은 평균 60.3%, 회사 경영에 대한 의견제시 건수는 1인당 평균 0.4건에 불과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최근 사외이사를 현행 전체 이사의 절반 이상에서 과반수로 늘릴 것을 권고했다. 이사수가 8명인 기업의 경우 5명 이상으로 사외이사를 늘려 사실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 기업과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기업들도 제대로 된 전문가들을 뽑을 수 있도록 사외이사 인력 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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