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박희태(朴熺太) 대표대행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12일 청와대 오찬회담은 1시간25분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먼저 노 대통령이 "오늘은 소화되는 이야기만 하겠다"고 분위기를 잡았고, 박 대행은 "대통령이 법조계 후배지만 우린 눈빛만 봐도 알지 않느냐"고 화답했다.노 대통령은 이어 "(박 대행과 같은 지역 출신의) 김두관 행자부 장관을 2년간 장관으로 데리고 있으려고 하니 너무 흔들지 말고 도와달라"며 김 장관이 다음 총선에서 박 대행과 겨루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박 대행은 "소화가 잘 되겠다"고 받아넘겼다. 다음은 회담 대화록.
노 대통령 검사들이 밀실 인사 검찰 장악이라고 해서 공개 토론하자고 했고, 검사들이 안 받을 줄 알았는데 덜컥 받아 걱정했다. 비공개로 할 생각을 했으나 방송일정이 잡혀 공개 토론을 했다. 검사들이 독한 마음을 먹고 나올 줄 몰랐다.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했는데 막상 그런 자리에 나가 보니 무척 힘들었다. 강금실 법무 장관에게 맡기고 거들려고 했는데 장관이 봉변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가만 있을 수 없게 됐다. 검사들이 작전을 잘못 짜서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내가 덕을 본 것 같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SK수사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협의한 뒤에 대통령과 의논하지 않고 검찰에 '발표 시간만 늦춰줘도 경제 충격이 적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수사 검사가 발표 시기를 조절할 수 없다고 했다.
박 대행 우리는 흔히 개혁을 사정·처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최근 외국계 기업들을 세무조사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런 발표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금감위 공정위 국세청 검찰의 수사나 조사 계획이 경제에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개혁은 제도와 관행을 고치는 것이다.
노 대통령 나도 대통령 되고 기분 좀 내려고 하는데 초장부터 분위기 망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공정거래위는 하나씩 하면 표적수사라고 해서 매년 초 1년간 계획을 발표해 왔고 이번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하더라. 이미 SK조사한 것을 말릴 수도 없고, '표적수사 의도가 없다'는 얘기밖에 할 수 없었다.
박 대행 삼성이나 두산이 다음 차례라는 이야기가 있다.
노 대통령 그런 소문이 어디서 나오느냐. 새로 구성된 검찰 지휘부에서 그런 순서를 짰을 리가 없지 않나.
박 대행 야당이 협조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달라.
노 대통령 한꺼번에 다 바로잡기는 어렵지만, 국정원과 청와대가 뒷문을 통해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례보고도 없애버렸다. 국정원 정보는 중요한 것만 챙긴다. 신상우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선임하면 청와대와 친하겠다는 의심을 안 받겠느냐. 검찰은 이번에 꽉 쥐었는데, 이전 정권을 보니까 3년 지나면 모든 비리가 검찰에서 나왔다. 난 검찰과 가까이 하지 않겠다. 검찰과 공정거래를 하고 부당 내부거래는 하지 않겠다.
특검 수사에서 (국내가 아닌) 밖의 것은 막도록 여야가 합의해 달라.
박 대행 특검은 어차피 국내에서만 조사하도록 돼 있다. 북한에는 못 간다. 특검법을 공포하면 변협에서 능력과 경륜 국가관 양심과 인격이 있고 국익을 아는 분 가운데 두 분을 추천한다. 그 중 한 분을 선임하면 된다.
노 대통령 문제는 제도다. 법이 공포되면 자의로 수사를 중단하지 못한다. 조사하다 보면 중국에서 누구를 만나는 게 나오는 등 외교문제로 번지게 된다. 미주알 고주알 나오면 골치 아파진다.
박 대행 북한 관계를 조사하지 않으면 규명이 안 된다.
노 대통령 북한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문제는 형사소추를 하지 않도록 명기하자. 14일 국무회의가 예정돼 있는데 내일 민주당과 한 줄만 만들어 달라. 대북거래에 관한 부분은 조사와 소추에서 빼 달라.
박 대행 수사 대상은 정상회담 직전의 송금사건 3건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5억 달러를 대출 받아 2억 달러만 송금하고 정상회담 직전의 3억불은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5년 내내 했던 대북송금을 밝히라는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 저쪽에서 하도 펄펄 뛰니….
박 대행 이상하지 않은가. 왜 특검을 못하게 하는 것인가. 더 이상하다. 거부권 정국으로 가면 예측불허다. 특검법을 통과시키면 법안심의나 정부 정책을 힘껏 돕겠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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