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 2기 구성이 여야 간 위원 배분 다툼 등으로 한 달 넘게 표류하면서 주요 방송정책 결정이 지연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1기 방송위원 임기는 지난달 11일로 사실상 만료됐다. 방송법 규정에 따라 임기가 자동 연장되긴 하지만 새 위원만 선임되면 바로 떠나야 할 처지여서 프로그램 심의 등 일상적 업무 처리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TV 전송 방식,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자 선정,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논란,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관련 법제 정비 등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굵직굵직한 현안이 덩달아 표류하고 있다. 방송위가 추천 또는 임명하는 KBS 이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EBS 사장 등의 선임(5월)도 차질이 예상된다.
현행 법상 방송위원은 총 9명으로,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6명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및 문화관광위원회와 협의해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이렇다 할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위원 선임을 미루고 있고, 국회도 여야 간 몫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느라 구체적 인선 작업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도록 한 방송법의 취지를 살려 교섭단체가 아닌 자민련을 배제하고 의석비율에 따라 한나라당이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 4명,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당은 "자민련도 포함시켜 소수 의견도 대변해야 한다"며 한나라당 3명, 민주당 2명, 자민련 1명 추천을 고집하고 있다.
양당은 총무 협의에서 이견을 조정하기로 했으나 평행선만 긋고 있다. 문화관광위 한나라당 간사인 고흥길 의원측은 "민주당이 계속 협상을 거부할 경우 방송 위원 축소(7명)를 골자로 지난달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2기 방송위 구성은 하반기로 늦춰질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야의 나눠먹기 싸움에 공정하고 공개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방송계 안팎의 요구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줄대기, 밀실 인사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이 와중에 국회 문화관광위 일부 의원이 20일부터 외국의 고도(古都) 보존 및 생활체육진흥 정책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해외시찰을 떠나기로 해 빈축을 사고 있다. 문광위 관계자는 "해외시찰은 지난해부터 계획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전국언론노조는 11일 성명을 통해 "시급한 현안을 제쳐둔 채 유람성 외유에 나서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김광범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정치권이 말로는 방송개혁을 외치면서 치졸한 밥그릇 싸움만 계속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하루 속히 논란을 매듭짓고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물로 2기 방송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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