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司試개선 지금이 호기
알림

[아침을 열며]司試개선 지금이 호기

입력
2003.03.12 00:00
0 0

고시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달 치러진 사법시험에는 1,000명을 뽑는데 무려 3만여 명이 응시하였다. 외무, 행정고시 등 각종 고시와 자격시험에도 엄청난 지원자가 몰려 매년 경쟁률을 경신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역량이 고시에 쏠리고 있다. 학생은 물론 멀쩡한 직장인마저 회사를 그만두고 신기루 같은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 자격증 시대임이 실감난다.고시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자격시험들도 채용과 직접 연결은 되지 않지만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고시와 같다. 고시는 중국의 과거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587년 수 문제는 귀족이 관직을 세습하는 구품관인법을 폐지하고 시험으로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를 도입하였다. 과거는 왕조 교체에도 불구하고 청조까지 지속되어 1904년 폐지되었다. 우리도 958년 고려 광종이 귀화인 쌍기의 건의로 과거를 실시한 이래 1894년 마지막 과거까지 900여년 동안 인재를 선발하는 소임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고등문관 시험으로, 정부수립 후에는 고등고시, 후에는 사법시험 등으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신분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나 고시는 선진적인 제도이다. 경제력 등 현실적인 장애요소가 존재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응시할 수 있는 것이다. 합격하면 관리나 전문가로 대접받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법시험, 곧 변호사이다.

고시는 단 한번에 인생을 역전시키는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허상을 쫓아 아직도 수많은 청년이 나이를 잊은 채 곧 손에 잡힐 듯하지만 쉽게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신기루에 매달리고 있다. 이 순간에도 신림동 고시촌과 사이버고시촌에서는 몇 만 명의 청춘이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불나비처럼 젊음을 불사르고 있다. 1919년 루신(魯迅)은 평생 과거에 매달려 인생을 허비한 서생의 이야기를 '공을기(孔乙己)'에서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이 땅에 공을기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법시험 지원자가 엄청나게 많아 출제와 채점에 어려움이 크고, 게다가 시험에 대한 시비도 잦다. 그러다 보니 관리하기 편하고 말썽의 소지가 없게 문제를 출제한다. 올해는 개선되었다지만, 1차 시험은 '대통령이 임명권자인 경우로만 짝지어진 것은?' 등 법조문이나 판례집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출제되어 수험생들의 개성을 죽이며 무지막지하게 외울 것만 강조하고 있다. 수험생은 점차 단순한 암기 기계로 되어간다. 시험공부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의 창의력은 줄어들고 있음을 강단에서 매년 느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렇게 선발된 변호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변호사는 사회문제를 법 논리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선발제도는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능력이 아닌 결론만 외우는 단순한 암기능력만 검증할 뿐이다.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변호사는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언제나 뒷북만 칠 뿐이다.

변호사 시장도 곧 개방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환경에 맞춘 변호사 양성제도가 필요하다. 과거 제도는 교육과 유리된 채 시험만 치렀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고시학원이 성업중인 것에서 보듯이 사법시험도 대학교육과는 별개로 이뤄지고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같은 제도의 실패는 분명하다. 사법시험을 교육을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의사 양성 제도처럼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이 호기이다. 법조인 선발제도의 개선이 사법개혁의 출발점이다. 한강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정 긍 식 서울대 법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