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창조행위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문화의 구체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창조자는 지속적 자기부정을 필요로 하고, 그 자기부정은 자신의 미적 세계관을 담을 새로운 틀에 대한 모색을 불러오게 마련이다.이런 면에서 하성흡은 실로 창조자의 본성을 지닌 젊은 화가임이 틀림없다. 10여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젊은 수묵화가 하성흡의 특출한 재능에 감탄했다. 검은 먹물에 적신 한 자루 붓으로 구김살 투성이 검은 비닐봉지를 실제인 양 그려내는 재주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공미와 웅장미에서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짝 두 개 크기나 되고, 1,200명에 이르는 인물이 등장하는 한 폭의 수묵화는 나중에 아틀리에의 벽을 헐고 들어냈을 정도다. 그는 갖가지 표정을 가진 손가락 만한 크기의 토우를 엄청난 분량으로 제작해 설치작업으로 전시하기도 했고, 잡지에 미술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으며, 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문득 서울에 나타나 대형 음식점의 실내장식을 진두지휘하더니 광주(光州)로 돌아가서는 450여년 전의 한시를 48폭 그림으로 옮겨 책을 펴내는가 하면 선거운동에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재능과 패기에 넘치는 젊은 화가의 좌충우돌을 단순한 변덕이나 바람기가 아니라 자신의 미술세계를 확장하고 심화하려는 진지한 자기부정의 성실함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양성과 모험심이야말로 새로움을 위한 능동적 대처 방안이다. 수묵화라는 낡은 틀에 21세기의 생각을 담아내야만 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머지않아 하성흡은 자신의 재능과 패기를 떠받치고 있는 역동적 모험심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한국화단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심상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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