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10일 미·영의 2차 이라크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천명하면서 혈맹인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당초 안보리 이사국들의 기권표를 늘여 부결시키려던 프랑스는 세계의 반전 여론, 프랑스 석유 이익 등을 검토한 뒤 비토권 행사가 결코 밑지지 않는 장사라고 판단한 듯하다.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이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전쟁을 감행한다면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단호히 밝힌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다.
프랑스는 미국이 명분과 현실에서 크게 밀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6일 이라크전 임박을 선언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달러 외교'로 국제사회 설득에 나섰지만 유엔 사찰단의 보고 이후 조성된 안보리 내 반전 분위기를 되돌리지 못했다. 비토권 카드를 꺼내더라도 국내에서 지도력의 위기를 맞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부시 대통령의 대 프랑스 역공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실제로 시라크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미·영은 결의안 재수정 용의를 밝히면서 뒷걸음치고 있다.
프랑스는 평화를 내건 이번 도박이 국제사회에서의 독자적 위상을 강화하고 유럽 주도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힐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프랑스를 비하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늙은 유럽'발언으로 격앙된 프랑스의 언론들이 "프랑스가 비토권을 행사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8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경고에 발끈하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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