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것은 물러가고(陣) 새로운 것이 발(發)하는 시기. 동양의학 최고의 의서로 꼽히는 황제내경에서는 봄을 '발진' (發陣)이라 표현하며, '살리되 죽이지 말고 주되 빼앗지 말고 상주되 벌은 주지 말아야 생발(生發)하는 기운으로 가득한 봄에 순응할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생발지기(生發之氣)는 커녕, 봄 햇살에 오히려 몸이 찌뿌드드하고 졸리고 입맛이 없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소화불량이나 현기증을 나타내기도 하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는 갱년기 증상 비슷한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안세영교수는 "춘곤증은 겨울철에 제대로 양생하지 못해 겪게 된다"면서 "봄의 정기를 가득 담은 음식물 섭취로 새로운 기(氣)를 보충하라"고 권한다. 의학적으로는 '계절적 피로감'이라고 진단 내려지는 춘곤증은 안교수 지적처럼 우리 몸에서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이 고갈돼 부족한 상태다. 더구나 봄에는 신진대사가 왕성해지면서 비타민 소모량이 겨울보다 3∼5배 증가한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교수는 "비타민 부족 상태에 빠지기 쉬우므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라"면서 "특히 탄수화물 대사를 돕는 B1과 면역기능을 돕는 비타민 C를 충분히 섭취하면 좋다"고 권한다.
비타민 B1은 보리 콩 땅콩 잡곡류와 견과류에, 비타민 C는 채소류나 과일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용철 교수는 "낮에는 생선이나 육류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저녁에는 곡류나 과일 야채 해조류 등을 섭취하라"고 말한다. 단백질은 졸음을 좇고, 탄수화물은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양·한방에서 꼽는 대표적인 봄나물은 냉이 달래 쑥 취나물이다.
향긋한 냉이 된장국은 채소 중에서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고 칼슘과 철분도 풍부하다. 또 푸른 잎 속에는 비타민 A가 풍부하다. 냉이는 눈을 밝게 하며, 보혈제로 좋다. 특히 여성에게 좋은 식품으로 자궁수축작용이 있어 자궁출혈이나 생리량이 많을 때 강력한 지혈효과를 볼 수 있다. 출산 후 몸이 붓는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달래는 생채로 해먹으면 좋다. 동의보감에서 마늘(대산)과 비교해 소산(小蒜) 또는 야산(野蒜)이라고 일컬었던 달래는 마늘과 성분이나 효과도 비슷하다. 비타민 C와 칼슘이 많아 빈혈과 동맥경화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간을 강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신경안정 효과도 있어,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나 불면증에도 좋다.
알칼리성 산채인 취나물은 곰취 참취 개미취 등이 있는데, 우리가 주로 먹는 것은 참취의 어린 잎이다. 취나물에는 칼륨 칼슘 비타민C 등 무기질의 함량이 높으며, 하루 5∼15g씩 지속적으로 먹으면 당뇨병 예방에 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통에도 좋은 식품이다. 또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과 암을 예방하고 노화 억제에도 뛰어난 베타카로틴이 봄나물 중에서 가장 많이 함유돼 있다.
비타민A가 풍부한 쑥은 예로부터 위를 따뜻하게 하고 장을 튼튼하게 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몸이 찬 냉증 여성에게 특히 좋다. 또 피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뛰어나 혈압계통 질병 예방에 효과적이며, 변비 치료나 숙취 제거에도 좋다.
이외에도 씀바귀 원추리 두릅 등에도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돼 있다. 씀바귀는 식욕을 돋우며 미열로 일어나는 한기를 없애주고 정력과 심장 기능을 강화한다. 산채의 왕 두릅은 혈당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 좋다. 생즙을 내어 마시면 통풍 두통 신경통 등에 좋으며, 감기 초기 환자에게도 효과적이다. 안교수는 "봄나물은 신선한 맛으로 미각을 살릴 뿐 아니라, 풍부한 영양으로 나른한 봄의 피로를 이기는 데 큰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질 때는 2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것도 좋다"면서 "봄을 심하게 탄다면 녹차를 자주 마시라"고 권한다. 녹차는 카페인 비타민 나이아신 등 무기염류가 풍부해서 정신을 맑게 하고 기억력과 지구력을 늘려준다. 또 비타민 B를 보충하기 위해 쌀밥보다는 현미 보리 콩 팥 등을 넣은 잡곡밥을 먹는 것이 좋다.
안교수는 "양생법의 실체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라며 "봄에 만물을 싹 틔우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 가을에 그 결실을 거두어 겨울에 갈무리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 사람은 그저 그 법칙을 흉내내면 된다"고 말했다.
/송영주 편집위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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