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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생활하수 마시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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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생활하수 마시는 아이?

입력
200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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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어느 여름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한 정치가의 마지막 말이 '술 한 잔만 달라'는 것이었다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한때 소주병을 딸 때마다 한 잔의 분량만큼을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소주에는 몸에 해로운 불순물이 들어 있다. 가벼운 성분이므로 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첫 잔은 버리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이 같은 '고수레' 심리를 이용한 업체들의 전략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소주 판매량을 15% 정도 증가시키는 데 일조하기는 화학공학자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학력 파괴의 현장이었다고 할까. 소주병 안에 '맥스웰(물리학자)의 악마'가 들어앉아, 용해되어 있는 불순물 분자들을 골라낼리가 만무했으니 말이다.

소주에 정말 유해성분이 들어 있었다면 판매 금지 처분을 내리거나 아예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은근과 끈기'의 사람들은 한없이 너그러웠다. '불순물이 있다면 버리고 마시면 되지.' 원 세상에!

그런데 요즘에는 내 아이가 생활하수를 마신다는 데도 사람들은 너그럽다. '내가 버린 생활하수, 내 아이가 마십니다…' 공익광고의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TV 화면 속의 어린이가 물 한 잔을 마시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가히 엽기적이다.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아이가 마신 물이 과연 '돌아온 생활하수'인가 아니면 '돌아온 맑은 물'인가. 만일 생활하수라면 큰일이다. 상· 하수도료를 포함해 우리가 피땀을 흘려서 바친 세금은 어디에다 쓰고, 아직도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수를 마시도록 하는가.

만일 그 아이가 마신 물이 생활하수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공공연한 기만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장의 되풀이 때문에, 정당한 환경운동마저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의 신세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이 다시 돌아오지만, 사실 정보의 진솔한 전달이 아닌 충격요법은 물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귀한 정신만 소모시킬 뿐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데도 화장실을 폐쇄할 수는 없다. 생활을 하면 생활하수는 배출되기 마련이다. 생활하수는 더러울 수밖에 없다. 물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자신을 더럽혀서 남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이다. 다행히 물의 가장 좋은 성질은 다른 어떤 자원보다도 쉽게 재생되어 깨끗해져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구정물도 다시 수돗물이 되고 해수도 담수로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물이 '샘물'처럼 맑으면 사람들은 휘발유보다 비싸더라도 기꺼이 사서 마신다. 물 문제 역시 자유시장에 맡겨야 비로소 올바른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다.

조 영 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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