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1일 밝힌, SK그룹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는 외압의 실체 인정 여부와 관련해 상당한 폭발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이 새 정부 출범이후 경제부총리와 금감위원장이 검찰총장을 비공개로 만난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를 정당하다고 주장한 게 뇌관에 해당한다. 여기엔 "검찰 독립성 때문에 청와대가 수사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으므로 앞으로는 관련 정부기관이 나서 그때 그때 검찰에 필요한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방침이 깔려 있다.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토론회에서 "외압 시비를 우려해 검찰에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수석은 각료들이 검찰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당장 "대통령의 전화와, 대통령이 신임하는 장관들의 의견 전달이 정치적 무게와 외압의 강도 면에서 뭐가 다르냐"는 의문과 반론이 제기된다. '의견 전달'과 '외압'을 무슨 기준으로 가를지도 문제다. 문 수석은 또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장의 전화에 대해 "노 대통령이 부적절하다고 판단, 질책했다"며 '정부는 괜찮고 당은 안 된다'는 식의 '당정분리' 해명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부총리 등의 의견 전달이 노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는지, 노 대통령에게 사전·사후 보고는 됐는지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문 수석은 "노 대통령의 지시 여부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SK 수사 등에 대해 '사정기관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경제부총리 등의 의견 전달은 그 뒤인 4일에 이뤄진 것이어서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다. 문 수석은 경제부총리 등의 의견 전달이 '비공개였지만 공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료가 공식적인 일을 하면서 대통령에게 사전 재가를 받지 않았다면 그 또한 문제"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문 수석은 경제부총리 등이 수사 결과 발표 연기만을 요청했다고 했지만 실제 검찰총장에게 전달된 요구가 그것뿐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수사 검사에게 "다칠 수도 있다"며 외압이 가해졌다는 의혹에 대해 문 수석은 "SK 측 변호사가 서울지검 박영수 2차장 검사에게 연탄사건 수사의 예를 들면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 차장 검사도 기자들에게 "SK측 변호사가 그 말을 한 것은 맞다"면서도 변호사의 신분은 공개하지 않았다. '연탄 사건 수사'는 1981년 10월 서울지검 특수1부가 저질 연탄 제조사범들을 무더기 단속했다가 검찰총장의 사퇴 파동까지 불러일으킨 사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특별격려금까지 줄 정도로 수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연탄 파동이 일어나고 동력자원부 등에서 "경제사정도 모르고 수사했다"고 반발, 결국 허형구 당시 검찰총장이 취임 9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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