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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43>고르바초프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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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43>고르바초프 집권

입력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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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11일 54세의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됐다. 소련은 18년간 이 나라를 다스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1982년 11월 사망한 뒤 유리 안드로포프와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짧은 치세를 마감한 참이었다. 정치국의 핵심 멤버 가운데 비교적 젊은 고르바초프가 이 공산주의 종주국의 최고 권력자가 됐을 때, 이 권력 이양이 이내 세계사에 가져올 변화의 폭을 짐작한 사람은 소련 안에서든 밖에서든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지 4년 여 만에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면서 지도 제작자들은 이 지역의 국경선을 새로 그려넣어야 했고, 그 두 해 뒤에는 그의 조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마저 해체됐다. 길게 보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래, 줄잡아도 1922년 소비에트 연방 결성 이래 전세계의 좌익 블록을 이끌어온 나라가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진 것이다.

변화는 '재편(再編)'이라는 뜻의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서 국가의 몫을 줄여나가는 한편, 외교 부문에서 신사고(新思考)의 기치 아래 탈이데올로기·탈군사화를 추진했다. '개방' 또는 '투명성'이라는 뜻을 지닌 글라스노스티라는 이름으로 일반 시민들의 정보 접근도 확대됐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병폐를 바로잡아 레닌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시작된 페레스트로이카는 스스로의 가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폐기로까지 나아갔다. 고르바초프가 아니었더라도, 사회주의 체제는 자체의 모순과 세계 자본의 힘에 밀려 조만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라는 '세계사적 개인'은, 자신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 붕괴 과정에 극적인 속도를 부여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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