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갈등을 단순히 전쟁 문제 해법에 대한 견해차가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문화·종교·역사적 배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오랜 기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온 두 세계의 가치관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화두를 놓고 충돌하면서 현상적으로 극명하게 표출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시각은 이라크 사태가 막을 내려도 상당 기간 양측의 골은 메우기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역사적 가치관의 충돌
로버트 케이건 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공동대표의 최근 저서 '천국과 권력'은 유럽이 왜 미국을 오만한 전쟁광으로 비난하고 미국은 왜 유럽을 나약한 겁쟁이로 깎아내리는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케이건은 '대서양 양안의 문제'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반동적 정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은 수백 년 동안 참혹한 전쟁들을 겪었으며 결국 2차 대전 이후에는 각국이 어떻게 행동을 통제해야 하는지에 관해 새로운 견해를 형성하게 됐고 그 결과 다원주의와 협상, 설득에 기초한 유럽연합(EU)과 같은 제도가 탄생하게 됐다.
유럽은 무력외교를 과거의 유물로 청산하고 대신 '천국'을 창조해 냈다는 설명이다. 이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묘사한 데 맞서 18세기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주창한 '영구평화론'에 가깝다.
반면 미국은 "자유주의 질서의 진정한 수호와 진흥은 아직 군사력 보유와 사용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홉스의 세계관에 서 있다.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군사지도자에 대해 강한 신뢰를 보인다는 조사도 같은 맥락이다.
미 시사주간 뉴스 위크는 최근 미국과 유럽의 분열을 다룬 특집 기사에서 "유럽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법과 제도 속에 살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중재'가 아닌 '힘'이 결정적이라고 믿는다"는 것이 갈등의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치려는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배경
유럽인들이 보기에 종교에 대한 미국인의 집념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처럼 돈에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는 문구를 새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 유럽인의 시각이다.
미 미시간대학이 세계 각국의 생활수준과 종교관의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광적인 신앙심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유독 미국은 부유하면서도 높은 신앙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의 교회 출석률은 대부분의 유럽인보다 높다. 반면 유럽인들은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면서도 자유롭게 종교를 무시하곤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부시 대통령이 성경 내용에 바탕을 두고 선과 악을 들먹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국인들은 악(이라크)을 치려는 부시 대통령의 노고에 선뜻 반기를 들기 힘들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힘이 있다'기보다는 '정의롭다'고 여긴다.
뉴스 위크는 "이라크 사태로 인한 미국과 세계의 균열은 가치, 종교 및 문화적 연원이 뿌리 깊은 것이어서 치유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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