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한글을 터득해 책 읽기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머리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화선지와 같다. 그 화선지에다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 수묵화가 되고, 글씨를 쓰면 서예 작품이 된다. 어린이들은 어느 쪽이 좋다고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붓을 든 이의 의도대로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내보여 줄 뿐이다. 이는 아직 판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요즘 가정에서는 자녀를 하나 둘 정도만 두어 부모들의 자식 사랑도 남다르다. 내 아이를 똑똑이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 처음부터 세계 명작이라며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 등과 같은 책을 읽힌다. 그래야 내 자녀가 남보다 앞서 갈 것 같은 조바심에서다.
하지만 그런 외국 동화책을 읽게 하기 전에 조금만 생각해 보자. 대관절 우리 자녀를 어느 나라 아이로 키우겠다는 심사인가. 아직 책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받아들인 것이 없는 백지 상태인 자녀의 머리 속에 '공주'나 '요정', 그리고 '마법사'가 판을 치는 낯선 서구 의식이 맨 먼저 뿌리를 내릴 것은 뻔한 일 아닌가.
앞서 많은 부모들이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욕심을 부렸기에 오늘날 청소년은 물론 젊은이들까지도 우리네 도깨비나 귀신 이야기보다 요정이나 마법사, 공주 이야기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낯선 아이'가 된 것이다. 겉모습만 한국인일 뿐 의식은 자기도 모르게 서구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책 읽기를 막 시작하는 자녀에게는 우리 생활과 모습이 살아 숨쉬는 전래 동화부터 읽히자. 그렇게 해서 자녀들의 의식에 우리 것이 자리 잡은 후, 외국 이야기를 읽혀도 늦지 않다.
외국 것을 읽힐 때도 우리 것과 외국 것의 비율을 조절해 가면서 읽히자. 아무리 세계는 한 지붕 밑이고 국제화도 좋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만은 우리 얼과 뿌리를 간직한 한국인 모습을 갖춰줘야 할 것 아닌가. 뿌리 없는 나무가 어찌 이 땅에 살며 민족과 강산을 지키려 하겠는가.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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