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윤락녀가 강간을 당하자, 여자 형사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니들은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것들 아냐." 화가 난 주인공 고은비(예지원)는 윤락녀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몸 팔아 모은 돈 1,500만원을 공탁금으로 걸고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가슴에 새기고.윤락녀가 국회의원에 도전한다는 내용의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감독 송경식)는 매우 센세이셔널하다. 윤락녀라는 직업은 묘한 상상력을 부추기고, 그런 그녀가 신분적으로는 대척점에 있는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할 것 같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은 제목부터 정치 풍자를 겉으로 내세웠지만, 풍자극과는 거리가 먼 코미디이다. 감독이나 제작자도 "정치적 의미를 두지 말고 코미디로 봐달라"고 주문했는데, 이 주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가 있다. 코미디가 제공해야 할 웃음이 상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입부부터 '벗고 보여 주기'를 작심했다. 여당 총재가 야당의원을 죽이는 방법은 '복상사'. 이렇게 해서 원내 의석이 동수에 달하게 되고, 여당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오만봉(김용건)을 후보로 내세우고 선거전에 들어간다. 앵커우먼을 꿈꾸는 대졸 윤락녀 강세영(임성민)만 빼고 윤락녀 대부분이 가슴을 노출한다.
윤락녀는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당당한 신세대적 직업'이다. "휴지는 두루마리 말고, 크리넥스여야 해요. 음료수는 영비천으로 해주고…" 식으로 자신의 입사(?)조건을 내세우는 앵두(최은주)로 시작해 포주는 '매니저'를 자칭하고, 윤락녀들은 팬시한 분위기의 원룸에 살고 있다. "야가 시방 말 겁나게 안들어버리네잉"이라며 그들을 감싸는 신부 베드로(남진)마저 윤락녀를 직업인으로 인정한다. 거기까지도 '발상의 전환'이라고 봐 줄 수도 있다. 어차피 존재하는 현실이니까.
하지만 영화가 영 미적지근한 웃음을 전달하는 것은 주인공과 그 적들의 수준이 '평균 이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코미디라지만 여당이나 야당 후보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단순한 계산 외에는 정치적 전략이 아무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섹스 체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유권자 눈길을 끄는 고은비, 그보다 더 전략이 없는 국회의원 후보, '빗장걸이'의 효과를 본 여성 반장의 태도 급변 등 영화는 단세포적 공격과 반응으로 일관한다.
'정치인은 모두 부도덕하고 바보'라는 식으로 상대를 안일하게 설정하니, 고은비의 승리가 주는 쾌감의 강도도 당연히 떨어진다. 지능적인 구악 경찰을 내세웠던 '투 캅스'나 가짜 목사를 설정했던 '할렐루야' 등 90년대 풍자 코미디에 비해 풍자성은 떨어지고, 선정성만 강하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완벽한 누드 정치'를 표방한 고은비의 득표 과정이 '윤락녀는 천하다'는 인식을 하나도 깨지 못했다는 점도 정치 코미디로서는 감점 요인.
"마늘 먹고 인간이 된 웅녀의 도간(독한) 자궁에서 태어나신 단군 할아버지…" 식으로 유세를 펼치는 군소 후보, 순박한 기자인줄 알았더니 정치인에게 매수된 모리배에 불과한 백성기 기자(이문식) 등 조연의 캐릭터가 볼 만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판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여배우 예지원이 국회 담장을 넘어 화제가 됐던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코미디의 성공은 센세이셔널한 이슈 만들기에서가 아니라, 섬세한 영화적 완성도에서 나온다는 '코미디 영화의 제1조'를 간과한 것 같다. 14일 개봉. 18세이상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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