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과 함께 21세기 선진 경제로의 진입을 위한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의 여건은 이미 오래 전부터 허브전쟁에 뛰어든 아시아 경쟁국들에 비해 무엇 하나 나은 것이 없다. 일찍이 1990년대 초반부터 동북아 중심국가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김재철(金在哲) 한국무역협회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서 새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을 마련한 김대환(金大煥) 인하대 교수, 외국기업인을 대표해 동북아 중심국가 논의에 깊이 개입해온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 상공회의소 회장으로부터 새 정부의 동북아 허브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았다.
김재철 회장=우리 나라는 지금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변방국가로 전락하느냐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중국경제를 앞세워 급성장하는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이 바로 선진국 진입의 열쇠입니다.
존스 전 회장=한국은 외환위기를 신속히 극복하고 개혁도 성공적으로 했지만, 아직도 투명성과 사업적 마인드가 약하고 정부의 관리가 너무 많습니다. 세계적 기업과 인재들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허브전략의 목적이며, 그것은 온 국민이 허브정신(hub spirit)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김대환 교수=동북아 허브정책은 절박감에서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한국경제가 무엇으로 먹고 살지 막막한 상황입니다. 허브 전략은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승부처입니다.
사회=허브전략에서 어떤 분야를 먼저 추진할 지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김 교수=새 정부의 허브전략은 복합모델입니다. 당초 재경부가 마련한 허브전략은 금융에 무게 중심이 가 있었죠. 그러나 그러면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IT를 활용할 수 없습니다. 또 물류는 먼저 수출할 수 있는 물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IT에 투자하고 물류, 그 다음에 금융으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김 회장=IT, 물류, 금융을 포괄하는 복합모델, 클러스터 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에서는 우리의 지리적 여건과 주변정세를 볼 때 가장 강점이 있는 물류를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한번에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존스 전 회장=물류는 이미 선진국 수준입니다. 저는 순서보다는 먼저 허브정신을 갖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지키는 자세를 생활화하고, 윤리기준과 투명성을 높이며 영어실력을 올려야 합니다. 이런 환경이 된다면 외국기업들은 저절로 옵니다. 금융 센터는 5년 정도를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채권시장을 개방하면 금융발전이 빨라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교수=캐치프레이즈 하나 만들어야 겠습니다. 과거 개발시절에는 헝그리 정신이라면, 이젠 존스 회장이 말씀하신대로 허브정신이 우리의 좋은 지표가 될 것 같군요.
김 회장=동감합니다. 보완하고 싶은 것은 복합무역, 즉 상품무역뿐 아니라 서비스무역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조업은 돈과 기술이 있으면 되지만, 서비스는 외국기업이 직접 와서 방법을 펼쳐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물류 하드웨어를 갖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적인 물류회사는 없어요.
존스 전 회장=그래요. 허브정신은 머리만 바꾸면 되니까 돈 하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사회=경제자유구역(특구)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습니다.
김 교수=경제특구에 주는 인센티브를 큰 특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특구법이 당초 원안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다만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특정 지역에 외국인을 몰아 넣게 되는 부작용 등을 재검토 하자는 것입니다.
김 회장=1년 반 전 경제특구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그런 논란이 있었습니다. 특구에 영원히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고, 먼저 시범적으로 시행해보고 괜찮으면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것이지요. 특구법에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 절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특구로 지정됐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요. 집행 과정에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 회장=노동유연성을 주면 특혜가 될지 모르지만, 물류중심지가 된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등의 특징은 노사분규가 없다는 겁니다.
김 교수=(특구에서는)노동권을 일부 제한한 부분이 있는데, 여성 생리휴가와 파견근로제를 전문직종에 한해 유연하게 한 정도 입니다. 노조의 반발로 이 정도 완화하는 데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특구에서 노동권을 일부 완화하는 대신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이 타협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 회장=싱가포르, 상하이, 텐진, 후쿠오카 등 다른 나라도 다들 허브가 되려고 합니다. 우리만 추진한다면 천천히 우리 형편에 맞추면되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들 나라들이 모두 세금을 낮추고 규제완화를 하기 때문에 우리도 안 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규제를 줄인다면서도 다른 쪽에선 늘리고, 핵심은 손대지 않은 채 변죽만 울렸습니다. 규제완화를 하다가도 성수대교 같은 사고가 나면 없어졌던 규제가 모두 되살아 나곤 하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김 교수=법인세 인하는 조세개혁 전체와 맞물려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존스 전 회장=소득세도 개선해야 합니다.
김 교수=노사관계는 패러다임이 변해야 합니다. 과거 정부는 노동문제를 일이 생기면 그때 그때 대응해 큰 틀에서 발전이 없었지만, 새 정부에서는 마찰이 있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노사관계를 끌고 가야 한다고 봅니다. 노사관계가 보다 현실화, 민주화, 탈 정치화해야 합니다.
김 회장=노사간의 인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근세사를 볼 때 역사의 주체가 못되고 끌려 다니다 보니 잘못되면 남을 탓하고 한을 품어 왔습니다. 이제 적어도 살 만해졌으니 주체적으로 생각할 때가 됐습니다. 우리 민족은 천시(天時)를 만났지만 부족한 것이 인화입니다. 화(和)자는 벼화(禾) 변에 입구(口)인데, 반대로 입구에 벼화를 써도 화입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화의 기본입니다. 허브정신도 바로 주체정신 아니겠어요.
존스 전 회장=3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왔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마음먹고 방향 잡은 일은 실패한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금융센터든 물류센터든 확실한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동북아 허브를 위한 국민들의 컨센서스는 형성됐다고 봅니다. 이 같은 큰 일을 정부와 지방정부가 따로따로 해서는 안됩니다. 싱가포르의 '2018비전'(허브전략)만 해도 1,000여명이 14개월 동안 연구한 것입니다. 조속히 국가 전체적으로 마스터플랜을 짜고 실행조직을 가동해야 합니다.
김 교수=추진체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임기 내내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계시지만, 기구를 만들면 청와대 비대화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 같아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만큼은 과감한 결단을 내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리=권혁범기자 hbkwon@hk.co.kr
사진 최종욱기자
● 참석자
김재철 회장
전남 강진·67세
강진농고, 부산수산대 졸업
동화선단장, 동원산업 대표이사 사장
한국수산진흥회장
동원그룹회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제24, 25대 무협회장
김대환 교수
대구·53세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인하대 교수
참여사회연구소장
노사정위원회 위원
공정거래위 경쟁정책 자문위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
제프리 D. 존스 전회장
51세
美 브리검영대학 및 법률대학원 졸업
1971년 선교사로 2년간 한국에서 활동
미 베이커&맥켄지 법률사무소 근무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M&A 전문 변호사
주한 미 상공회의소장
산자부 외국인투자 자문위원, 중소기업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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