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전문용어로, 미스테리 쇼퍼(mystery shopper)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의 백화점이나 할인점들이 자사 판매원들의 서비스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척, 매장을 돌게 하는 '가짜 손님'을 말한다.쉽게 말하면 소비자 암행어사인 셈이다. 판매원 입장에서는 손님 응대를 소홀히 하거나 서비스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 눈에 띄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니 서비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백화점이나 식품업체들이 운영하는 주부 모니터 제도가 이를테면 한국식 미스테리 쇼퍼라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다름아닌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이다. 판매자 입장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 보자는 것이니까.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 나는 이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 아니 '입장 바꿔 행동해 보기'를 종종 써 먹는다. 공부 안하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아이에게 화가 나면 스스로 책상에 공책을 펴고 앉아 본다. 5분이 지나지 않아 온 몸이 뒤틀리고 어느 새 인터넷 유머방을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술 담배 못 끊는 남편이 꼴보기 싫어질 때면 직장에서 그가 받을 스트레스를 짐작해 본다. 술이라도 아님 얼마나 힘들까 싶어지고, 갑자기 측은해져 오히려 잘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노무현 대통령과 일부 언론의 첨예한 신경전을 보면서도 같은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노 대통령은 한 일주일쯤 편집국장이 되어보고, 편집국장은 반대로 청와대 집무실에 앉아보면 어떨까. 일주일 후에도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 할까.
이쯤 되면 "'이 사람, 순진하긴,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한가'라는 질책이 들려오는 것도 같다. 그래,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가. 아이 입장만 생각해 주다가 낙제생 만들면 그건 누가 책임지며, 내 남편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결사적으로 금연도 시켜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을 내 일처럼 생각하다 보면 뭔가 돌아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
요즘 재미있게 읽은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는 6가지 설득의 법칙이 소개되어 있다. 그 첫번째는 '상대방을 빚진 상태로 만들라'다. 인간이란 존재는 원치 않는 호의에조차 빚진 감정을 갖게 되고 결국 먼저 양보한 사람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주장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같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노 대통령께 한말씀 드리고 싶다. 가끔씩 '미스테리 국민'이 되거나 '미스테리 기자'가 되어보시는 것은 어떤가 하고.
이덕규·자유기고가(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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