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그 중에서도 월스트리트. 이 곳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해가 뜨고 진다. 런던에서 해가 지면 프랑크푸르트의 해가 뜨고, 또 그 곳의 해가 지면 다시 서울의 해가 뜬다. 이 곳은 세계 각지로 연결된 세계 금융망의 중추 신경이다. 9·11 테러에 세계인이 경악한 것은, 이곳이 미국의 중심일 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펀드를 창업한 제임스 박 사장은 "1시간 단위로 나의 국적은 바뀐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 정보를 분석할 때는 한국인이 돼야 하고 독일 시황을 살필 때는 독일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 생활을 하다 뒤늦게 투자의 세계로 뛰어든 박 사장은 "능력만 있으면 '하늘까지 오를 수 있다'(Sky is the limit)는 것이 월스트리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90년대 초반부터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들이 지배하던 이 '정글'에 다른 인종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아시아인들의 진출이 눈에 띄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은 뜻밖에도 인도인이다. 그 다음으로 중국계가 많고, 한국인들은 약 300여명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종적 차별이 존재하는 미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종에 상관 없이 순수하게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월스트리트다. 세계 최대의 주식 거래량을 자랑하는 살로몬 스미스 바니사의 중개인 김응철(33)씨는 "인종적 차별이 존재하는 미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종에 관계 없이 순수하게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의 매력"이라며 "특히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월스트리트에서 한국인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금융시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인은 웰스파고은행의 손성원 부행장이다. 그는 '미국 경제 흐름을 가장 잘 읽는 금융인'으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메릴린치증권의 손동원(68) 부사장, 시트킴 인베스트먼트의 김병수(67) 고문, 사이프로콘사의 존 리(58) 사장 등도 한인의 월스트리트 진출을 개척한 1세대들이다.
최근에는 한인 진출이 펀드매니저에서 애널리스트, 기업 인수 합병(M&A) 전문가, 회계사로까지 그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자신의 펀드를 직접 운영하는 한인 편드매니저로는 패러다임 매니지먼트의 제임스 박 사장, 디스커버리 캐피털의 데이비드 전 전무, 도이치 에셋 매니지먼트에서 '코리아펀드'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존 리(한국명 이정복) 전무 등이 대표적이다. 애널리스트 분야에서는 뱅크원 에셋매니지먼트의 신구 전무, 헤지펀드 L-R 글로벌의 매튜 장, 반얀 매니지먼트의 제임스 한 등을 들 수 있다.
월스트리트에 진출한 한인의 중요성은 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때 증명됐다. 외환 위기가 터지자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당시 한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려는 투자자들에게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설명하며 투자 유치를 설득하는 것은 물론 직접 펀드를 조성해 한국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렇게 참여한 사람들로는 도이체 에셋 매니지먼트의 존 리,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빌 황, 디스커버리 디지털 매니지먼트의 전무인 데이비드 전 등이 있다. 또 여러 채널을 통해 한국경제의 개혁 방향에 대한 조언도 했고, 한국 기업의 개혁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삼성그룹의 임원 인사나 SK텔레콤의 자금 전용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소액주주 운동과 연계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했다.
데이비드 전씨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월스트리트에 얼마나 많은 자국민을 진출시키느냐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쟁력이 얼마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그 기준을 조언해 주고,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투자자들에게 홍보해 주는 외교관 역할을 월스트리트에 진출한 한인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월스트리트 진출을 노리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경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외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지금의 세계 경제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닌 종합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의 전공이 철학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뉴욕=김기철기자 kimin@hk.co.kr
■ 월街 한인 생활상
월스트리트에서 한인들이 받고있는 평균 연봉은 20만∼30만 달러 정도이고, 초봉은 대략 17만 달러 정도다. 투자금융가나 펀드매니저 중에는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수입의 3분의 1을 세금으로 내고, 3분의 1은 고객 접대비 등으로 사용한다. 이들이 은퇴 후 회사로부터 받는 연금은 보통 4종류. 노후는 완벽하게 보장받는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의 한인들은 평균 2.4개의 외국어를 구사한다. 이들이 읽는 보고서 수는 하루 평균 27건 정도이다. 평균 근무 시간은 보통 새벽 6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로, 하루 13시간 이상 일한다. 그리고 하루에 150∼200통의 전화 통화를 하고, 60여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34세로, 40세가 넘으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없어 대부분 월스트리트를 떠난다.월스트리트에 있는 금융회사 액사의 최환승 부사장은 "월스트리트는 생존을 위해 지적, 정신적, 체력적 인 전쟁을 벌여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험악한 정글이지만 그래도 야심찬 젊은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 웰스파고은행 수석부행장 손성원씨
웰스파고은행 손성원 수석부행장.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는 한인들은 그를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인물로 꼽고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주요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언제나 손 부행장에게 예측 분석을 의뢰한다. 미국 경제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그의 전망은 언제나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해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로 손 부행장을 선정했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 역시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내릴 때 그에게 자문을 구하곤 한다.
손 부행장이 실물과 이론에 모두 해박한 미국 경제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그의 이력에서 드러난다. 손 부행장은 1962년 고교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와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당시 저개발 상태에 놓여있던 한국 경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싶었고, 그 해답은 미국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어렵게 마련해 주신 100달러를 손에 쥐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손 부행장은 이후 피츠버그대에서 당시로선 최단 기간인 2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닉슨 대통령에게 발탁돼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게 된다. 그 때 나이가 25세.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이 그린스펀 FRB 의장이다.
백악관을 떠난 뒤 손 부행장은 27세의 나이에 노스웨스트은행 부총재 자리에 올랐다. 이후 펜실베니아주립대 교수와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클라우드대 총장을 역임했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대학의 총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총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이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고를 당하자 총장직을 미련없이 그만 두었다. 그는 "이국 땅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던 안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컸다"며 "한 1년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손 부행장은 웰스파고은행에 들어가 본격적인 월스트리트 생활을 시작했다. 일에만 파묻혀 30년을 보냈다. 30년 동안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늦게까지 매일 전국 각 지점에서 올라오는 5,000여개의 보고서와 정부 발표 자료, 연구기관 보고서를 섭렵하고 현장에 나가 실물 경제 흐름을 살폈다. 그가 내놓는 경제전망 보고서의 정확성은 바로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월스트리트에서는 하루만 긴장을 풀면 바로 경쟁에서 뒤쳐지게 된다"며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늘 한국 경제의 흐름을 주목하고, 전망을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전망이 밝기는 하지만 몇가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반도체가 20%를 차지하는 수출 구조를 개선하고 수출 품목의 다양화와 부가가치의 제고를 주문했고, 금융시스템의 선진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주식투자가들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매일매일의 장세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는 몇 개의 회사를 골라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경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먼저 확보돼야 하겠지요."
그는 97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한국 투자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것을 설명하며 투자를 설득하는 등 알게 모르게 모국을 도왔다. 월스트리트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신뢰성 때문에 실제 많은 미국 투자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에 있는 한인들의 생각이다. 그는 "그때 내가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감시자의 역할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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