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우골탑(牛骨塔)의 신화가 그립다. 많은 농민들이 소 팔아 자식을 대학 보내던 시절, 대학 진학, 특히 서울대 진학은 계층 이동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서울대 학생들이 많은 시위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서울대가 그런 꿈과 희망의 전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사교육의 중요성과 비용이 높아지면서 돈 많은 순서대로 서울대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서울대 출신이 사회 각계의 상층부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괴력을 발휘하는 현실은 중상류층의 서울대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마저 그런 변화에 압도된 것인가? 그들은 서울대의 그런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늘 국가와 민족을 앞세워 보다 더 많은 정부의 특혜만을 요구해 왔을 뿐이다. 심지어 외부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조차 "웬 뒷 집 개가 떠드나?" 하는 식의 오만한 무시로 일관해 왔다.
서울대와 서울대 교수는 보수 집단으로 전락했다. 극소수 서울대 교수들이 외치는 '진보'마저 철저하게 상아탑(象牙塔)용일 뿐, 서울대 교수들은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들은 모래알처럼 파편화해 자신과 자신이 몸담은 학과의 안전과 번영만을 위해 노심초사할 뿐이다.
김민수는 서울대 교수들의 양심 농도를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김민수는 4년 반 전 서울대 미대 교수였다. 그는 한국 학계의 해묵은 금기를 깨고 '원로 교수'의 친일 행적을 들춰냈다. 이건 자신의 안전을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해선 안될 일이었다. 이 나라에 상전을 목숨처럼 받드는 조폭식 인간관계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김민수가 왜 쫓겨났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울대 교수들도 알고 학생들도 알고 서울대 밖의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모두 들고 일어나 김민수를 복직시켜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들은 교수 재임용 제도를 '양심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다. 학과의 고유 권한에 대해 외부인이 개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도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대 교수들은 그 사건을 계기로 교수 재임용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했던가?
지난 2월 언론인 홍세화씨는 김민수의 복직 여부는 정운찬 총장의 개혁성의 진정성을 알게 해주는 가늠자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을 좀 달리 한다. 정 총장의 개혁성도 믿기 어렵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서울대 교수들은 각자 다 '총장급'이기 때문에 총장이 학과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서울대 교수들이다. 과거 서울대 사람들을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게 만들었던 건 양심의 힘이었지 법과 규칙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이 아니었다. 김민수가 서울대 교수들의 양심 농도를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서울대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이 서울대가 특권집단으로서 보수화하고 있는 현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직시해야 하리라 믿는다. 우선 김민수부터 응시하기 바란다.
이 글의 불손함에 대해선 용서를 빌고 싶다. 벌써 4년 반이나 지났는데 이제 읍소할 단계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내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