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安熙正·40)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이제 '좌(左)희정'이 아니다. 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만나본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한다. 최측근 '좌 희정 우 광재'가운데 이광재(李光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더욱 노 대통령 가까이 다가섰다. 하지만 안 부소장은 노 대통령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정치지망생이다."솔직히 섭섭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는 "혹시 부모(노 대통령)가 나에게 뭐 좀 물려줄 게 없을까, 그런 고민도 해봤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현실은 이제 독립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냉정하게 스스로의 상황을 말한다.
안 부소장은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의원의 비서였다. 19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김 의원을 떠나, 합당을 '반민족적 폭거'라고 비난한 노 대통령 곁으로 갔다. 그 뒤론 96년 총선 후 선거캠프가 뿔뿔이 흩어졌을 때 8개월을 빼고는 노 대통령을 떠나본 적이 없다. 대선 과정에서는 정무쪽 일을 맡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다. 안 부소장이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에 연루됐다는 한나라당 주장의 영향이 컸다. 그는 딱 10일 동안 청와대로 갈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주어진 상황은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만약 순탄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면, 그의 인생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됐을 것이다. 안 부소장은 고1때 운동권 형들을 따라다니다 퇴학을 당했다. 유신말기인 79년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충남대 복학생 그룹을 알게 돼 경찰에 잡혀갔던 것이다. 이듬해 서울 성남고에 입학을 했지만 3개월 만에 자퇴했다.
그 뒤 서울대 79학번이던 누나가 교사로 나가던 야학을 다녔다. 그 곳에서 공부를 하던 청계피복노조 집행부와 어울리며 "잘 놀았다"고 한다. 검정고시로 고대 83학번으로 입학했지만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 구속돼 94년 2월에야 졸업했다.
그는 다음 총선에서 이인제(李仁濟) 자민련 총재대행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을 노리고 있다. 안 부소장은 "선거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링 위에 올라가서 싸우는 일이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싸움이라 더욱 좋다"고 투지를 감추지 않았다. 정치적 거목과의 한판 승부도 정치인 안희정이 맞아야 할 수많은 도전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려는 듯 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사진 손용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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