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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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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

입력
2003.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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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 지음·김성철 사진 푸른역사 발행·1만3,000원300년 전 조선에 소대헌(小大軒) 송요화(宋堯和·1682∼1763)와 호연재(浩然齋) 김씨(1681∼1722) 부부가 살았다. 문신이자 학자였던 소대헌은 큰 업적이나 이름난 문집이 없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반면 그의 아내 호연재는 수많은 시문을 남긴 시인으로 유명하다. 대전 송촌동에 있는 은진(恩津) 송씨 종가는 이들이 살던 옛집인데, 이 부부와 그들의 전후 10대에 걸친 선조들의 유물과 자료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이 부부가 결혼할 때 쓴 물건부터 200년 동안 대대로 책력에 메모 형식으로 적은 일기며 며느리들이 만든 요리책, 집안 어른과 아이들이 쓰거나 보던 책, 놀이 도구, 온갖 생활용품과 의복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어 가히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은 이 집에 전하는 유물과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사대부 집안의 생활사를 퍼즐을 짜맞추듯 재구성한 것이다. 한문학자 허경진(연세대 국문과 교수)씨는 이 책을 "손과 발로 썼다"고 말한다. 은진 송씨 종택과 이 집의 선비박물관을 수없이 드나들면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결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소대헌과 호연재의 혼인부터 집 장만, 가족 구성, 교육, 놀이, 벼슬 살이, 문학 생활, 죽음과 문집에 이르기까지 11개 장에 걸쳐 299컷의 사진과 설명으로 정리돼 있다. 그러나 1월에 나온 책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저·사계절 발행)에서와 같은, 양반집 생활사로서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함은 대체로 부족한 편이다. 예컨대 호연재의 자녀 교육은 '엄했다'고만 나와있지,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알 길이 없다. 저자가 생활사 전문가가 아닌 한문학자인 탓도 있겠다.

그런 아쉬움을 덜어주는 구체성은 호연재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호연재는 '마음이 넓고 태연하다(浩然)'는 당호처럼 당당했다. 그는 여자의 행실을 가르치고 스스로 경계하는 뜻에서 직접 쓴 '자경편(自警篇)'에서 투기는 악행이지만 남편의 패덕이 원인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첩을 '적국(敵國)'이라고 표현했다. "부부의 은혜가 비록 중하지만 제가 이미 나를 깊이 저버렸으니, 나 또한 어찌 홀로 구구한 사정(私情)을 보전하여 옆 사람들의 비웃음과 남편의 경멸을 스스로 취하겠는가?"라고도 했다. 이따금 술을 마시고 술기운에 호탕한 시를 짓는가 하면, 근심 걱정이 있을 때는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이 책의 의의는 일단 한 집안에 전하는 방대한 유물을 정리한 데 있다. 이를 토대로 추가 연구가 이뤄져 생활사로서 살을 붙여나가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진 중심의 도록으로 펴냈으면 더 나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을 컬러로 하지 않고 붉은 색을 입혀 작게 쓴 것은 시각적으로 답답해 보인다. 글을 잘게 쪼개어 붉은 활자로 일일이 소제목을 단 것도 독서의 흐름을 끊는 지나친 친절로 보인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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