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2시 인천 남구 숭의4동 수봉공원내 문화회관. 건물 밖으로 웅장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와 한낮 공원의 정막을 깼다. 소리가 나는 곳은 2층 대회의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흥에 겨운 표정으로 연주에 취해 있었다.'울고 넘는 박달재' '제비' '정선아리랑' '예스터데이'…. 이들의 연주곡은 가요 민요 가곡 팝송 등 가릴 게 없다.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가락들이다. 간혹 연주음이 불안해도 얼굴 붉히는 일은 없다. 한 단원이 실수하면 다른 단원들이 그윽한 미소로 음을 바로 잡아준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격려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인천 서구 '실버오케스트라'(가칭)는 6월 정식 창단을 앞두고 요즘 '완벽한 화음'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5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노인들로 구성된 단원은 모두 20명.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 기타 피아노 아코디언 드럼 오르간 등 다루는 악기만 보아도 어설픈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 군악대와 미8군, 대중음악 악단 등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쟁쟁한 실력파. 기량과 열정만으로 보면 여느 악단에 뒤지지 않는다.
단장이자 총지휘자인 김점도(69) 할아버지는 1980년대 국내 최초로 '우리노래대전집'(전 5권)을 낸 대중음악의 산증인이다. 트럼펫 연주자로, 작곡자로 40년 이상 외길을 걸었다.
"취미활동도 하고 남에게 아름다운 선율도 선사하고. 일석이조 아닌가?"
현재 한국가요사박물관 관장으로도 활약하는 그는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 취미활동을 하면 늙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최고령 이은옥(71) 할아버지는 "힘이 젊은 시절만은 못하지만 취미생활 정도로는 너끈히 불 수 있다"며 "연주자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료들과 나이 들어서도 같이 할 수 있어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사천 공군 군악대장과 유명 악단 등을 두루 거친 30년 경력의 베테랑 색소폰 연주자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부단장 조덕연(58)씨는 악단의 '막내'다. 지금도 작곡자로 후진을 양성하고 주민자치센터 노래교실 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테너 색소폰을 부는 이관옥(70) 할아버지는 인천 토박이. 미8군 밴드와 밤무대 악단 등에서 40년 이상 연주하며 명성을 날렸다. "10년 동안 악기를 못 만져 솜씨가 많이 녹슬었다"는 그는 "그래도 조금만 하면 금방 실력을 되찾을 자신이 있다"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들은 자신감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고 연습에 임하는 자세도 그만큼 뜨겁다. 매주 목요일 오후1∼4시 연습시간에는 거의 대부분 참석할 정도. 오히려 1시간 일찍 나와 악기, 악보를 점검하기도 한다. 해군2함대 군악대장을 지낸 최을생(68) 할아버지는 " 가요 팝송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지만 최신 곡은 낯이 익지 않아서인지 연주에 약간 힘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몇 가지 현실적 문제 때문에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단원들의 의욕이 저하될 때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마땅한 연습장소가 없다는 사실. 현재 문화회관 인천예총 회의실을 임시로 빌려 쓰고 있지만 문화행사가 많아지는 4월부터는 더부살이조차 힘들 것 같다. 실버오케스트라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 악보편성비 등 최소한의 경비도 겨우 마련하고 있다. 김점도 할아버지는 " 실버오케스트라 출범을 3개월 여 앞두고 연주회 등을 위해 연습 횟수를 일주일 한번에서 두세번으로 늘려야 하는데 장소와 비용 문제로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서구 관계자는 "정식으로 창단되면 전용 연습장을 제공하고 경비도 지원하겠다"며 "실버오케스트라는 사회복지시설을 위문하고 불우이웃 자선 음악회를 여는 등 지역봉사활동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는 이달 중순까지 단원을 추가 모집하기로 했다. 문의 (032)865―4009
/글·사진 =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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