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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권력의 타성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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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권력의 타성을 경계하라

입력
2003.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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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을 때, '원산 폭격'은 매일 반복되는 기합이었다. 무더위 속에 땅에 머리를 박고 있으면 얼굴은 금세 붉어지고 굵은 땀이 흘렀다.그러나 기합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있었다. 기합을 주던 소대장은 늘 훈시를 곁들였는데, "민간 사회에서 몸에 밴 '타성'을 없애주겠다"는 게 그의 단골메뉴였다. 그 때마다 도대체 몸에 뱄다는 타성이 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처지가 아니었다. 다만 군 조직에 맞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개조하기 위해 타성을 들먹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각 분야에 묻어있던 기존의 낡고 색바랜 타성을 씻어내려는 개혁 작업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상당수 정부 부처 장관에 파격적인 인사들이 기용됨으로써 노 대통령이 추진할 개혁의 서곡은 울린 셈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인사를 파격적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이야말로 타성에 젖어있다"고 했다. 각 분야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생각의 틀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타성에 젖은 조직과 조직원이 개혁의 대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한 발언이었다.

40대 여성인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장관 임명은 그 자체가 개혁이라고 할 만큼 '노무현식 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일선 지검 부장검사급에 해당하는 사법시험 기수, 검찰 경험은 전혀 없는 판사 출신 법조인, 게다가 독신의 여성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검찰은 경악했다. 그뿐인가. 강 장관에 이어 법무차관으로 일선 지검장 경험조차 없는 정상명 기획관리실장이 내정되자 검찰의 충격은 최고조에 달했다. 강 장관은 "차관이 사시17회에서 발탁됐지만 검사장급 인사는 13회 아래를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짜겠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12회 인사들을 겨냥하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직'과 '용퇴'중 선택을 권유받은 일부 검찰 간부들은 잔류와 사퇴의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계 질서가 분명한 검찰 조직에서 또다시 후배가 선배를 밀어내는 모습이 재연된 것이 볼썽 사납긴 하지만, 어찌 됐든 40대 판사 출신 여성 장관에 의한 검찰 개혁은 이런 모습으로 시동을 걸었다.

사실 검찰 간부의 퇴임 여부는 일반 국민에게 큰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언론에서 이름을 계속 거명하면 퇴임 후 변호사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게 솔직한 '택시안 민심' 이다.

이렇듯 시큰둥한 국민들이 검찰 개혁의 효과를 절감케 하려면 검찰이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정치적으로 독립된 최고의 사정기관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과거에도 인적 청산을 통한 검찰 개혁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한계에 부닥쳤다.

장관이 검찰에 대한 인사권과 예산권, 수사 지휘권을 모두 쥐고 있는 상황하에서의 인적 청산은 권력과 검찰 사이에 새로운 '통제와 예속' 구조만 재생산할 뿐이었다.

검사가 청와대 등 정치권과 과천 청사만 바라보는 한 검찰 독립과 부정부패 청산은 요원한 일이다. 검찰에 대한 모든 권한을 손에 쥔 채 검찰 개혁을 하겠다는 강 장관의 발언은 그래서 염려스럽다. 정권을 잡으면 검찰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던 과거 권력의 타성마저 느껴진다. 강 장관은 자기 식, 자기 생각만으로 훈련병의 타성을 없애려는 소대장이 되어선 안된다. 비단 강 장관 뿐 아니라 새 정권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그래야 한다. 권력을 잡기 전의 타성을 점검하고, 타성에 빠질 수 있는 권력의 위험을 경계해야 할 때다.

황 상 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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