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피를 절개한다. 드러난 뇌 내부는 '바다'다. 구조도 없고, 희끄무레한 신경세포만으로 이루어진 하얀 바다와 같다.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의 이정교(51) 교수는 신경항법장치의 도움을 받아 그 바다를 항해한다. 레이더와 좌표를 보며 망망대해를 헤치는 항해사처럼 컴퓨터 영상을 보면서 종양이라는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뇌 수술은 뼈와 장기를 눈으로 보며 수술하는 외과 수술과는 판이하다. 뇌 내부에 박힌 종양이나 선천성 기형으로 인한 간질은 뇌를 열어도 좀처럼 병소를 구분할 수 없다. 반면 신경항법장치는 적외선 센서가 달린 검사침을 대면 3차원 뇌 영상 속에서 검사침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이렇듯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찍은 영상정보가 컴퓨터에 입력돼 있기 때문. 두피에 기준점을 붙인 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2㎜ 간격으로 촘촘히 찍어 뇌 내부의 어떤 좌표도 2㎜ 단위로 읽을 수 있다.
"과거의 뇌수술은 의사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의사 성격에 따라서도 달라요. 어떤 의사는 수술을 시작했다가도 조심스러워 물러서고, 어떤 의사는 용감하게 절제합니다. 용감하다고 좋은가요? 종양은 확실히 제거할지 몰라도 자칫 마비를 불러올 수 있죠." 서울아산병원의 조사에선 신경항법장치를 이용한 뇌수술의 93%가 후유증 없이 치료됐는데 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첨단 장비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명의'는 없다? "물론 모든 판단은 의사가 하지요. 그러나 어떤 인간이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이틀 전 이 교수가 수술한 45세 남성 환자에 대해 신경과는 수술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언어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꼼꼼히 분석한 결과 이 교수는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환자는 아무 문제도 없고, 상태가 매우 좋아졌습니다. 이틀동안 얼마나 기분이 좋은 지, 통쾌하네요."
이러한 도전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 교수를 신경외과 의사로 만들었다. 이 교수가 레지던트를 하던 1980년대 초만 해도 뇌수술이라곤 눈으로 보이는 뇌출혈이나 머리를 부딪혀 다친 정도에 머물렀다. 이 교수는 미개척분야인 뇌종양수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악성 종양은 여전히 난제다. 수술이 잘 된 것 같아도 결국 사망하는 환자를 보면서 그는 "뇌종양 치료는 50년 전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조차 든다.
반면 간질 수술은 최근 급속히 발전, 성과를 보인다. 이 교수는 간질 수술을 하는 몇 안 되는 신경외과 교수로 꼽힌다. 간질 수술은 특히 심리검사, 뇌의 기능에 대한 연구, 첨단 영상장비, 섬세한 수술 등이 모두 합쳐진 현대 의학의 총아. 이 교수는 "약물로도 치료가 안 되는 간질 환자를 수술로 치료했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앞으로는 컴퓨터를 이용, 원격 수술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경험 많은 의사라도 나이가 들면 섬세한 수술이 어려워진다"며 "신경항법장치와 수술로봇을 이용하면 사람이 하기 어려운 미세 수술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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