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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송판도]<1> 의료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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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송판도]<1> 의료소송

입력
2003.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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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신(神)이 아닌 이상 의료사고를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의료사고는 누구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의료사고 피해자는 법률적 보상을 받기가 어려웠다. 고도의 의료지식이 필요한 의료소송에서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환자측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타격 포인트만 제대로 잡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사법연감에 따르면 95년 의료사고로 법원에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건수는 179건에서 지난해 666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95년의 경우 환자측이 일부 승소라도 한 경우는 48건(원고 패소는 323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원고 승소(일부 승소 포함)가 178건으로 병원측이 이긴 80건보다 2배 이상 많을 정도로 상황이 반전됐다.

의료소송의 핵심 쟁점은 '의사 과실을 누가 입증하느냐'와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해줄 의무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미국이 의료사고의 과실 유무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지우는 반면 우리나라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를 환자측이 입증토록 하는 입장을 취해 환자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95년 환자측의 입증 책임을 상당히 완화한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요지는 "환자측이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행위를 증명하고 다른 원인이 개입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증명하라(사고의 원인이 될 건강상 결함이 없다는 것 등). 이 경우 의사가 그 결과가 다른 원인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라. 입증하지 못하면 의료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병원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95년 2월10일 선고, 93다52402)고 판결한 것. 그러나 입증 책임이 의사로 완전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법원은 " '권리는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한다'는 민사소송의 대원칙이 있어 입증책임의 완전 전환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사들의 설명의무에 대해 법원은 '수술확인서 용지에 서명날인을 받은 것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기준선을 갖고 있다. 나아가 더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적극 설득하지 않을 경우 배상 책임을 인정, '설명'을 넘어 '설득'의 의무까지 부여하는 추세다. 최근 대법원은 성형수술 환자에게 "수술로 예상되는 개선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막연히 흉터부위가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면 설명의무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의료소송 영역은 갈수록 세부 분야별로 넓어지고 배상액도 늘어나고 있다. 광주지법에서는 지난해 암환자 4명에게 방사선을 과다하게 쐬게 해 숨지거나 후유증을 일으킨 병원측에 2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의료소송 사상 최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계는 비상이 걸렸다. 의료계에서는 "지나친 소송이 의학의 진보를 막고 소신 진료를 어렵게 한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의료전담 재판부인 민사9부 오석준 판사는 "판례도 의학 수준과 연계해 변한다"며 "현대의학의 수준에 맞춰서 보통의 의사가 기울일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판결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 의료소송 전문변호사들

의료소송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여서 소수의 전문 변호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우선 신현호, 최재천, 전현희 변호사를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로 꼽는다. 신 변호사는 의료소송 분야를 개척한 1세대급 변호사로 명성이 높은데, 최근에는 의료문제 전반에 관한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비교적 의사쪽 소송을 많이 맡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의료전문 법무법인인 한강의 대표 변호사로 의료소송 분야의 '판례 제조기'로 불린다. 최 변호사는 주로 피해자인 환자측을 주로 맡는다. 대외메디칼로를 이끄는 전 변호사는 서울대 치대를 나온 의사 출신. 원자력병원 등 30여개 병·의원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지난해 광주 모 대학병원을 상대로 사상 최대인 2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밖에 의사 출신인 법무법인 지평의 김성수 변호사, 최초의 간호사 출신 변호사인 손명숙 변호사도 독자 영역을 개척중이다. 의료전담 재판부 출신인 법무법인 충정의 장용국 변호사, 법무법인 일신의 김선중 변호사도 법원 경력을 바탕으로 지명도가 높다.

의료소송은 1심만 1년6개월∼2년 가량 걸릴 정도로 오래 걸리는 데다 전문 지식, 소송 노하우가 필요해 수임료는 비교적 비싼 편. A급 변호사는 착수금이 환자의 경우 500만원 내외, 병원은 1,000만∼2,000만원 선이다. 승소시 성공사례금은 환자측의 경우 승소금액의 20%, 병원측은 소송가액에서 실제 판결금액을 뺀 액수의 10∼20% 정도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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