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영화에서 여자들을 못살게 군다고 여성 평론가들의 비난이대단하지만 설령 그 감독의 영화가 ‘반여성적’이더라도 그건 여성에 대한 집착이 지나친 나머지 발생한 충동적 우발 범행의 혐의가 짙어 보인다.반면 호러 영화가 집단적으로 여성을 괴롭히는 방식은 자못 지능적이고,교활하며, 아주 잔인하다. 이쪽은 확신범이다.
1950년대 범죄 영화인 필름 느와르가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을만들어내 막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나쁜 여자’의 굴레를 씌웠다면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포 영화는 잘 나가는 여자, 혹은 집 나간 여자들을 끊임없이 공포에 노출시킴으로써 장르의 번성을 꾀하고 있다.
당신이 홀로 아이를 키운다고 가정해 보자. 둘이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구해야 하는데 오늘이 마지막 면접일. 아이 유치원이 끝났을 시간이지만유치원으로 달려갈 수는 없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직장을 얻는다. 유치원이 끝나고도 한참 지났을 시간, 헐레벌떡 유치원으로 달려갔을 때, 유치원문은 닫혀 있고 아이는 흔적이 없다. 비는 억수로 내리는데, 우산도 없는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아이 문제. 일본 공포 영화의샛별 나카다 히데오의 공포 영화는 결손가정의 아이가 어떻게 위험에 노출되는가를 보여준다. 홀로 있는 아이는 그의 친근한 벗인 비디오를 보다가“일주일 내 죽는다”는 주문에 빠지게 되거나, 어머니가 데리러 오지 않아 홀로 남은 여자아이에게 귀신이 슬쩍 다가와 들러 붙는다.
비디오를 본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어머니(‘링’)이고,실종된 아이 귀신으로부터 딸을 지켜내기 위해 결국 귀신 소녀와 동거하는것도 어머니 (‘검은 물 밑에서’)이다. 영화에서 아이는 홀어머니와 살고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포 영화는 순결하지 못한 처녀들을 공격한다. 지난 여름 큰흥행을 기록한 ‘폰’이나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흥행에 실패한 ‘하얀 방’ 모두 임신 중절의 경험이 있는 처녀를 공포 속으로 몰아 넣고 난도질한다. 중절 경험이 있는 여자는 육체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더럽고, 그래서 저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
한때 수많은 여자를 희롱했으며, 결혼 후에도 재능을 버리지 못해 결국이혼당한 후 아이 하나만 데리고 사는 남자. 그 남자 곁으로 다가 선 이상한 그림자. 이런 그림으로 시작하는 공포 영화는 왜 없을까. 하긴 그건 공포가 아니라 ‘주접극’이 되긴 하겠다. 그래도 요즘 영화는, 집 나간 여자나 몸 버린 여자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부추길 땐 언제고.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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