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믿지 마라. 오직 자기 자신만 믿어라.' 미 중앙정보국(CIA)의 고참 교관 버크(알 파치노)의 말대로 등장인물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누가 속고 있으며, 누가 속이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로저 도날슨 감독의 '리크루트'는 깔끔하고 세련된 스릴러다. CIA 첩보원 교육현장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련한 알 파치노와 신예 콜린 파렐의 연기 대결에는 적절한 긴장과 이완이 있다. 곳곳에 숨겨 놓은 트릭도 즐거움을 한 몫 거든다.
제임스 클레이튼(콜린 파렐)은 출중한 실력을 갖춘 재목. MIT 수석 졸업에 복싱을 비롯한 운동실력, 섹시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젊은이다. 그는 컴퓨터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CIA 교관이자 스카우터인 버크가 던진 낚시고리를 덥석 문다. 버크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 얘기를 미끼로 던졌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CIA 지원자를 테스트하는 일명 '팜'으로 간다. 시험 내용에는 각종 첨단무기 작동은 기본이고, 거짓말 탐지기 분석, 도청과 사기술, 그리고 술집에서 여자를 낚는 일까지 포함돼 있다. 알 파치노는 능숙하게 지원자들을 다루며 서서히 난이도를 높여간다. 어디까지가 시험이고, 어떤 게 현실일까. 관객은 지뢰찾기 게임을 하듯 제임스와 함께 시험을 치른다.
한편 제임스는 입사시험 때부터 레이라(브리지트 모이나한)와 눈빛을 주고 받으며 돈독한 동기애를 넘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도 믿을 수 없다. 혹시라도 버크가 던진 미끼일지 모르니까. 영화는 관객에게도 미끼를 던진다. 시험을 치른 동기인 잭과 레이라가 중동지역 언어인 파르시어로 대화하는 장면을 넣거나, 술집에서 여자를 낚기 위해 들어간 제임스가 레이라를 만나 밀어를 나누는 장면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끼는 점점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된다. 버크는 제임스에게 레이라가 이중간첩임을 알리고, 레이라가 CIA 정보를 빼돌리는 현장을 포착할 것을 지시한다. 서로 감정에 끌리면서도 제임스와 레이라는 서로의 눈을 속여가며 감청을 하고 서로의 자료를 훔쳐본다. 레이라가 의문의 사내와 접선을 한 뒤 제임스가 기차역에서 추적하는 장면, 제임스가 레이라의 차를 추적하는 장면을 통해 긴장은 고조된다.
비정하고 날카로운 베테랑 교관 역의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는 여전하고, 콜린 파렐도 수준급 연기를 보여준다.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풍의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런데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팽팽한 줄다리기를 포기한다. '보이는 것 그대로 믿지 말라'는 버크의 교훈대로라면 멋진 반전이 있어야 하건만!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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