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에 '마니페스토(Manifesto)'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으로 귀에 익은 이 말은 일본 정계에서 "이념 수치 재원 기한 등을 명시한 구체적 선거공약"을 지칭하는 새로운 정치용어로 사용된다.
원래 일부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민들이 알기 쉬운 선거공약을 제시하고 공약준수를 약속하기 위해 발표하던 '마니페스토'가 중앙 정계에서도 화두가 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까지 선거 후에는 '空約'이 돼버리던 선거용 '公約'이 아니라 정말로 지키고 그 성과를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가 판단준거로 삼을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진짜 대 국민 정치 약속'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니페스토의 일본어역을 '정사확약(政事確約)'으로 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우선 집권 자민당이 마니페스토 만들기에 적극적이다. 2001년 4월 "낡은 자민당을 깨부술 각오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사자후를 토하며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은 집권 초 80%를 넘는 지지율을 자랑했다. 그러나 "개혁 없이 성장 없다. 대담하고 유연한 개혁을 지속한다"는 구호만 반복되고 불황 속의 국민 생활이 실제로 나아지는 것이 없는 가운데 지금은 지지율이 반토막 났다.
최근 아사히(朝日)신문 여론조사에서는 '개혁'이란 말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43%뿐이고 52%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국민 사이에 개혁피로감이 나타난 것이다. 이 때문에 자민당 내에서 올해 예상되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에 대비해 새로운 '마니페스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6월까지 마니페스토를 만든 뒤 다른 공조 야당들과의 공동 마니페스토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관료나 학자의 아이디어, 업계·이익단체의 요구사항 등을 종합선물상자에 담아 개혁이란 포장지로 싼 지금까지의 선거공약으로는 국민의 정치불신만 깊어지고 누가 집권을 해도 개혁을 이끌 정치적 리더십이 나오지 않는다는 위기의식은 일본 정치권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마니페스토 역시 새로운 포장지일 뿐 그 뒤에는 또 '진짜 마니페스토' '진짜 진짜 마니페스토'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냉소적 시각도 있다. 지난해 일본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정치인보다 점장이의 신뢰도가 높게 나왔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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