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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50>소설가 최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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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50>소설가 최 윤

입력
2003.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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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문학을 하나?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뀐 지금에 와서 조금 썰렁하게 들리기도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런 물음도 필요 없이 문학에 대해 목숨을 걸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뭐라고 딱 부러지게 정의하지 않고도, 남우세스럽게 원천적 질문을 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나누어 가진 것이 있어서 문학에 대한 말로 직진할 수 있었던 때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고 문학의 '관행'이 달라졌다.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이 내게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길거리를 넋 놓고 걸어가는 내 앞에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이대고 이렇게 묻는다 치자.

"안녕하세요. 취재 중입니다. 당신은 왜 숨을 쉰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어디로 숨을 쉬는 거죠?"

왜 숨을 쉬느냐고? 아마도 조만간 인간을 숨을 더 낫게, 좀 더 진보적으로, 혹은 인간의 입이나 코를 통하지 않고 숨쉬게 하는 기상천외한 과학기술이 개발됐나 보다. 그래서 취재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 최소한 한 번 정도는 호흡을 골라 숨을 한 번 쉬어보았을 것이다.

문학은 문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숨쉬기와 같을 것이다. 가벼운 숨, 거친 숨, 격렬한 숨, 터질듯한 숨, 메이는 숨, 잦아드는 평안한 숨, 깊은 한숨, 소리를 억누른 숨…. 매번 다르게 숨을 쉴 때마다 '나는 숨을 쉰다'고 생각하지 않듯 문학은 대부분의 글쟁이들에게는 그처럼 온몸, 온 존재와 하나가 되어 있는, 리듬이 언어의 파도를 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건 확실히 심장에 직결되어 있는, 심장을 통해서 세상과 교통하는 활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건 모든 위대한 말을 동원해 죽어 있음을 강요하기를 그치지 않는 세상에서 드물게, 살아있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권에 충실한 활동이다. 그건 세상에 떨어져 나오면서 누구에게랄 것 없이 우렁차게 울어대는 태아의 탄생 곡성을 어딘가 닮아 있는 '살아있는 활동'인 것이다.

문학 속으로 걸어 들어가 문학을 '하기'까지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물론 어느 길로 걸어 들어갈 때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나 그 길을 택하게 된 성향 같은 게 있게 마련이다. 내게는 기억에 남을 만큼 이것이다, 강조해 말할 만한 계기는 없다. 혼자 있는 것이 싫어서 끄적거리던 감상적인 글, 좀 더 커서 세상을 관찰하면서 재미로 쓰기 시작한 일기장, 문자시대에 성장한 사람이 한두 번 참여하게 마련인 글쓰기 대회에서의 크고 작은 보상 같은 것들을 문학을 하게 된 계기로 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책, 사람, 사건과의 만남이 있겠지만 거기서도 대표적으로 내세울 만큼 결정적인 몇 개의 사건은 없다. 그들은 모두 합창으로 존재한다.

대신 내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가 있었던 어떤 성향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명명하자면 일종의 중독 성향이다. 그것은 밤 새도록 하는 공기돌 놀이부터 시작해 세상의 온갖 잡사에 지독하게 빠져드는 경향이다. 만화도 음악도 그림도 있었지만 사람, 사랑, 사적 혹은 공적 사건들도 적잖이 그 중독적 몰입의 대상이 되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상을 달리하면서 나를 사로잡은 수집 취미도 이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기돌 놀이는 시작하면 손톱이 빠지도록 했고, 만화를 그리면 며칠을 굶고 그렸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게 보낼 시간은 늘 생겼으니 이상하다. 지금도 대략 마찬가지다. 잘 살 시간은 없어도 글 쓸 시간은 있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그런 성향이 어떻게 내게 생겼는가는 쉽게 짚어지지 않는 또 다른 문제다. 어떻건 아주 일찍이 일, 이도의 강도의 차이가 나를 주변 사람과 구별짓는 그런 성향의 문제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문학은 말하자면 내게 그런 식으로 다가왔다. 마약중독 같이 한걸음 한걸음, 야금야금 나를 끌어 잡아당기더니, 어느 순간 물귀신처럼 내 온 존재를 몽땅 잡아먹어 버렸다. 다른 중독에서는 그럭저럭 잘도 빠져 나왔는데 문학에 관해서는 상황이 다르게 진행됐다. 그렇게 문학의 바다에 빠지고 나니 홍수 뒤의 한껏 부푼 물위에서처럼, 너나 할 것 없이 구차한 삶의 모든 가재도구가 그 바다 위로 떠내려 왔고, 그것들을 집어올려 살림을 차릴 수 있었으므로 구태여 빠져 나올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중독의 기본적 생리는 무엇인가. 데일 정도로 뜨겁고 생의 상식적 경영을 내팽개칠 정도로 파국적일 수도 있지만 기본은 무엇보다도 쾌락이다. 쾌락 없는 중독이란 없다. 그래서 우선 소설 쓰는 일에 쾌락을 느껴 문학을 하느냐고 되물어도 딱히 부정할 수는 없다. 쾌락은 늘 투명한 즐거움의 색채와 고매한 의미로만 수식될 수는 없는 매우 까다롭고도 오묘한 것이라고만 대답해 두자. 한 모금만 더 빨아 들이면 꼭 죽을 것 같은데, 바로 백척간두의 팽팽한 스릴을 즐기며 금지된 한 모금을 마침내 들이마시는 파괴적 쾌락을 모든 흡연 중독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중독자들의 쾌락에는 그 전, 그 후의 고통과 씁쓰름함 혹은 회한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가 무엇에 중독되었다면 그 모든 여파나 여진을 그 무언가가 온통 흡입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문학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면 그것은 나를 사로잡았던 이제까지의 짙고 옅은 모든 중독을 모조리 흡수해 자기 것으로 하는 광대무변의 대양을 문학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양에 떠올라 온 허술한 살림집기 하나 타고 앉아 한 여자가 식구도 내팽개치고 하루 종일 홀로 앉아 무언가를 던지고 또 던진다. 구멍 숭숭 뚫린 언어라는 이름의 어망. 어차피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어망 안으로 고기들이 끼어 들지만 대부분은 들여올렸다가 뒤집어 버리는 것이 그 사람이 무언가를 낚아올리는 일보다 더 잘 할 줄 아는 일이다. 저녁 찬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아우성소리도 그 여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그렇다고 꼭 무슨 빛나는 야심찬 고기를 잡겠다고 작정을 한 것도 아니다. 찾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잡힌 것이 아닌 것은 알기에 그 일은 계속된다. 매우 위험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대충 이런 그림이 슬쩍 뇌리에 떠오른다.

사실 대부분의 독자는 물론이고 때로는 글 쓰는 사람들 당사자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문학을 하는 데 늘 똑 부러진 이유가 있진 않다는 사실이다. 다르게 말하면 글을 쓰는 분명한 이유가 밝혀지는 그 즉시 그 이유가 뭣이건, 문학은 자신이 스스로 그것의 아류임을 밝히게 되는 묘한 위치에 놓이는 생리를 갖고 있다. 문학이 목적으로 삼는 것이 무엇이건, 다른 영역의 활동보다 더 기능적으로 문학이 그 목적을 이루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문학이 더 효과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면 바로 문학은 그 목적 이상의 것을 현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문학을 왜 하는지 말 못하는 것이 좋다. 발설해서도 안되고 발설할 수도 없는 그 이유 때문에 문학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밤에만 몰래 자라는 등에 붙은 꼬리나 배꼽 속 무늬처럼 드러내 보여주지 않아야 기가 사는 어떤 것이리라. 누구나 그런 것 하나 정도는 숨기고 있을 것이다.

● 연보

1953년 서울 출생 1976년 서강대 국문과 졸업 1978년 '문학사상'에 평론 '소설의 의미구조 분석' 발표 평론가 등단 1988년 '문학과사회'에 중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발표 소설가 등단 1984년∼현재 서강대 불문과 교수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속삭임, 속삭임' '숲 속의 빈터' '열 세 가지 이름의 꽃 향기' 장편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 '겨울, 아틀란티스'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 등 동인문학상(1992) 이상문학상(1994)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1994) 한국펜문학상(1997) 한국번역가협회 대상(1998)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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