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순수해야 할 나이인데, 지식의 바다인 인터넷을 하룻밤 성관계를 할 상대를 찾는 사냥터로만 이용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4일 오전 서울고법의 한 법정. 50대의 재판장이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20대의 앳돼보이는 피고인에게 이례적으로 따끔한 충고를 했다. 재판장이 요즘 젊은 층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인터넷 채팅을 통한 성폭행범죄를 3∼4분여 동안 질타하자 피고인은 고개를 떨궜다.
피고인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성을 강간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고모(23)씨. 고씨는 지난해 8월 대화방에서 채팅을 통해 만난 피해자 A(21)씨와 처음 만난 당일 성관계를 맺고 여행까지 떠났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A씨는 태도를 바꿔 성관계를 거부했고, 이에 화가 난 고씨는 A씨의 집에서 강제로 성폭행하기에 이르렀다. 고씨는 이어 "차비가 없다"는 이유로 A씨로부터 20여만원 상당의 현금과 귀고리를 빼앗고 폭력까지 휘둘렀다. 고씨는 그러나 A씨의 동생이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붙잡혀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20대 초반에 불과한 고씨가 법정에 선 것은 이번이 벌써 3번째. 이전에도 사기와 절도죄로 실형을 산 경험이 있었다.
심리를 맡은 전봉진 부장판사는 고씨에게 "한창 높은 꿈을 꾸어야 할 나이에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인터넷은 삶에 유용한 지식을 얻어내는 정보의 바다이지 하룻밤 성관계를 맺을 대상을 노리는 공간이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인터넷 채팅으로 소일하다 또 다시 범죄에 빠진 청년에 대한 '인생 선배'의 충고였다.
재판부는 이런 애정어린 꾸중의 말을 마친 뒤 고씨의 형량을 1년 4개월 낮춰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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