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 라는 말이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도 사건의 전체 정황을 살펴보면 연쇄적으로 이어진 순간마다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 여러 사람의 의식에 '설마' 하는 생각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었다.처음 사고 열차 안에서 방화용의자가 라이터 불을 켰다 껐다 할 때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두려움도 느꼈겠지만 '설마 어떻게 하려고?'하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고, 대구지하철 중앙사령실 역시 모니터를 보고도 '설마' 하며 열차를 역에 진입시켰고, 기관사 또한 역내의 시꺼먼 연기를 보고도 '설마' 하며 열차를 정지시켰다. 즉 여러 사람들의 거듭된 '설마'가 총탄 한발을 핵폭탄으로 둔갑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나쁜 상황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이런 점은 경우에 따라서는 희망적으로 상태를 호전시키기도 하지만,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을 더 심각한 상태로 이끌기도 한다.
대구 사건이 '설마' 하는 의식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마무리 된 사건이라면 작금의 북한 핵 위기는 현재 우리가 이런 의식을 가진 채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은 우리나라를 곧 전쟁이 터질 수 있는 활화산과 같은 상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 안은 어떤가? 계속되는 뉴스 보도 속에서도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고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복권 열풍으로 온 나라가 후끈 달아 오르고 있다. 이렇게 '설마 전쟁이 일어날까'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성숙하고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하며 산다. 국가적으로 볼 때 각종 재난 관리 시스템은 어느 정도 국민의식 수준의 향상과 경제적 성장 하에서 가능하다. IMF환란위기를 넘기고 우리는 다시금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섰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주먹구구식의 '운 좋으면 비켜가고 재수가 없으면 당한다'라는 생각은 더 이상 안된다.
'설마' 하는 생각 대신 '혹시?' 하며, 생길 수 있는 사고에 신속하게 대처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대비는 개인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사회 공공 시스템 속에서 재난 방재에 대한 범국민적 준비는 보다 절실하다. 이런 준비는 이론과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 학습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훈련도 개개인이 진지한 태도를 갖지 않는 한 아무 효과도 없다. 이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그리고 나는 내가 지킬 수 있도록 자기방어 훈련을 철저히 하자.
권 준 수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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