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성은 정당의 핵심 요건이다. 정당은 무언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여야 한다. 그래야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또한 그래야 사회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권자의 관심을 환기시켜 정당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요즘 한나라당의 역동성은 많이 떨어져 있다. 이길 것이라고 자신하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으니 의기소침할 만도 하다. 수년간 당을 이끌던 지배적 지도자가 은퇴했으니 당 활동이 한동안 공백에 빠질 만도 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맥빠진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제1 야당으로서, 그리고 국회 다수당으로서, 한나라당은 역동성을 되찾아야 한다. 적극적 활동을 통해 새 정부에 건전한 견제를 가하고 한국정치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동성을 되살릴 수 있을까.
정당의 역동성은 내부 다양성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다양한, 때론 상충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들릴 때 정당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여러 입장과 의견간에 차이점과 공통분모를 찾고 설득 타협 조정을 위한 상호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억압된 획일적 정당에선 일방적 지시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활동만 가능할 뿐, 살아 숨쉬는 역동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 민주당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 위치를 공화당에 빼앗겼다. 하원에서도 여러 의석을 잃었다. 중동 전운에 편승한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다고 하지만 대통령 소속당이 중간선거에서 불리하다는 통념에 기대를 품던 민주당원들로서는 실망이 컸다. 대통령직과 상하 양원이 모두 공화당 품에 안기게 된 상황에서 민주당의 사기는 곤두박질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곧 소생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내년 말에야 있을 대통령선거가 마련해 주었다. 여러 민주당 정치인들이 대선 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하고 득표 작전에 들어감에 따라 민주당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리버만, 에드워즈, 케리, 게파트 등 지명도 높은 정치인들뿐 아니라 생소한 이름의 정치인들까지 9명이 공식 출사표를 냈다. 앞으로 몇 명이 더 나올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도 출마할지 등을 놓고 민주당 내부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중요한 점은 출마 후보군이 다양한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진보적인 후보도, 중도보수적인 후보도 있다. 부시의 대이라크 군사행동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섞여있다. 신자유주의자와 노조주의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흑인, 여성, 유태인이 끼어있다. 출신지역도 남부 중서부 동북부 등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에 후보간에 다차원의 논쟁이 불거지고, 각 후보가 다각도로 미국 유권자에게 접근하려 노력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집합개념으로서의 민주당이 활성화하고 있다. 즉, 대권을 향한 다양한 정치인의 존재와 경쟁이 미국 민주당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민주당이 다양성을 억압한다면 역동성은커녕 유권자의 관심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미국 민주당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한나라당은 여러 상반된 목소리를 억누르기보다는 오히려 불거질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곧 있을 대표 경선은 좋은 기회이다. 유력 주자들 뿐 아니라 소장 의원들도, 그리고 중도나 보수 정치인들 뿐 아니라 진보적 인사들도 경쟁에 참여해야 다양한 입장간의 열띤 공방을 통해 당이 역동성을 되찾을 수 있다. 만약 아무개는 색깔이 다르므로 당을 떠나야 한다는 획일주의적 흑백논리가 퍼진다면 희망이 없다. 억지로 다양함을 막다가 결국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것인지, 아니면 다양성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당 활성화의 원동력으로 삼을 것인지, 선택은 한나라당 정치인들 스스로에 달려있다.
임 성 호 경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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