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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대전 국제엑스포이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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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대전 국제엑스포이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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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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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터미널에서 엑스포과학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택시를 탄 기자가 "엑스포과학공원이요" 하고 행선지를 밝히자 택시기사가 "꿈돌이동산이요?" 하고 되묻는다. 의아해 하자 그는 "그게(꿈돌이동산) 그거(엑스포과학공원)에요. 처음 오셨어요? 옛날 생각하면 안 돼요…" 한 뒤 한동안 말이 없다. 10여분을 달렸지만 엑스포과학공원을 알리는 이정표 하나 없었다. 1993년 8월 경제올림픽으로 불리던 '대전 국제엑스포' 행사로 '과학입국'의 긍지와 자존심을 떨쳤던 대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 행사장. 당시 아이들은 엑스포 구경을 한 아이와 못한 아이 두 부류로 나뉘었고, 그래서 어른들도 뙤약볕에서 서너 시간씩 줄을 서는 고행도 마다 않고 기꺼이 아이들의 손을 이끌었다.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난달 27일. '행사기간 93일 동안 관람객 1,300여만 명'의 경이로운 기록과 "볼 것 없다"던 택시 기사의 충고를 떠올리며 과학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행사장의 웅장함은 여전했다. 대전의 상징인 '한빛탑'도 건재했다. 하지만, 공원은 물론이고 그 옆에 자리잡은 꿈돌이놀이동산도 들어서기 민망할 만큼 썰렁했다. 지난해 개장한 아이스링크를 빼고는 관람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안내 직원은 "지금이 비수기"라고 했다.

16만평 부지에 세워진 대형 전시관의 골격은 그대로였지만 세월의 더께로 녹슬었고 그나마 상당수는 휴관 중이었다. 인간과 과학관, 정보통신관, 자동차관, 우주탐험관, 이미지네이션관, 도약관 등 6개 전시관은 적자로 문을 닫았고 곤돌라 시설인 스카이웨이는 간판이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운영되는 전시관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 엑스포 행사 당시 3∼4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테크노피아관. 도우미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올해 1월 교체한 시뮬레이션 영상이 시작됐지만 110명 정원의 객석엔 고작 2명. 올림푸스 신화를 담은 영상물 내용도 평범했다. 관람을 마친 시민들은 "시시하다", "다른 놀이공원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다른 상영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관객이 없어 아예 상영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한 영사기 직원은 "손님이 한명도 없어 빈 관람석에 영상을 틀었던 적도 있다"고 씁쓸해 했다.

전시물도 10년 전 그대로였다. 행사 당시만 해도 마냥 신기했을 법한 컴퓨터 구조를 설명하는 키보드와 모니터, 버튼으로 조작되는 각종 전시물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광(光) 마우스, 플레이스테이션에도 이골이 난 아이들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전시장 보듯 휙 지나친다. 도우미 신기해(25·여)씨는 "관객이 없을 때도 그렇지만 열심히 설명해도 관객들이 들은 채 만 채 할 때 더 힘이 빠진다"고 했다.

정작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전시관보다 산책과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조카들을 데리고 공원을 찾은 김인영(28·충남 천안시)씨는 "옛날이랑 다르네요. 문 닫은 곳도 많고, 몇 군데 들어갔는데 조카들이 재미 없어 하고 저도 흥이 안 나서요. 대신 건물은 멋있잖아요" 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한 직원은 "손님이 많을 때는 안내하는 일이 뿌듯했지만 요즘엔 객쩍다"고 착잡해 했다. 이날 공원을 찾은 관람객은 모두 400여명에 불과했다.

운영 주체라고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운영자도 바꿔 보고, 이런 저런 청사진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관리 혼선과 운영미숙, 예산 부족에 따른 시설 노후 등 문제점들을 낳았고, 시민들의 관심에서 차츰 멀어졌다.

지방공사 대전엑스포과학공원 관계자는 "사후 활용방안에 대한 정확한 청사진 없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을 모르는 대전 시민들은 "툭하면 엑스포공원이 새롭게 거듭난다고 한 것이 벌써 10년이지만 바뀐 게 없다"고 불평했다.

당초 정부 특별기구인 엑스포조직위원회가 총괄했던 엑스포공원은 1년 뒤인 94년 민간 업체인 (주)엑스피아월드에 운영권이 넘어가 재개장했다. 공원 관계자는 "그러나 재투자는 하지 않고 수익만 내려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바람에 국민 과학교육의 장이라는 당초 취지가 퇴색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운영이 부실해지자 정부는 97년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공원의 해외 매각, 대기업 매각, 사이버파크 조성 등 방안을 두고 갈팡질팡하다 99년 공원에 대한 모든 권한을 대전시로 이양했다. 현 운영주체인 지방공사 대전엑스과학공원이 설립됐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전엑스포 부지(2만평)였던 꿈돌이놀이동산은 30년 동안 민간에 운영권이 넘어가 있고, 공원 운영도 중앙대식당, 모노레일, 스카이웨이, 각 전시관 운영주체 등 따로따로다. 이중 모노레일과 스카이웨이는 민간업체가 손을 떼면서 철거되거나 미운영되고 있다.

18개 전시관도 공사가 운영하는 전시관 14개와 담배인삼공사 에너지관리공단 한국통신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전시관 등 운영주체가 5곳이나 돼 영이 제대로 설리 없다. 한국통신이 운영하던 정보통신관은 "기존 시설로는 기업 이미지만 나빠진다"며 문을 닫았고 공기업과 대기업들이 홍보관으로 사용하던 전시관은 모기업이 하나 둘 손을 떼면서 폐허처럼 방치돼 오히려 공원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

공사 직원들은 공원이 이렇게 전락한 게 정부가 무리하게 공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 잣대를 동시에 적용한 탓이라고 했다. "엑스포의 엄청난 성공만 믿고 안이하게 생각한 게 잘못입니다. 공원의 내용은 바꾸지 않고 돈만 벌어오라니, 남자를 여자로 바꾸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 직원은 "재투자라고는 간간이 회사 로고를 바꿔단 것밖에 없다"며 "운영주체의 일원화도 숙제"라고 지적했다.

28일 오후 일과가 끝난 엑스포과학공원 직원 100여명이 모두 모였다. 전체 회식도 10년 만이다. 불판에 삼겹살이 익는 동안 지난달 취임한 3대 이강로 사장은 직원들 테이블을 돌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직원들의 사기를 살리고 공원 활성화 방안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대덕연구단지와 연계해 학생들이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종합적 테마공간을 만드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대안이 나왔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공원 전체를 갈아엎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문까지 심심찮게 돌았지만 우리는 공원을 지켰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대전=글·사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외국에선…

외국에서도 단 한번의 대규모 행사를 위해 조성된 엑스포 시설의 사후처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최국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부만 기념관 형태로 운영하고 시설 대부분을 철거하고 민간에 매각해 활용하는 것이 주된 해법이다.

엑스포 시설 활용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1970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의 경우 80만평의 부지 중 42만평을 민간업체에 넘겨 동물원과 녹지공원으로 꾸미고 나머지는 엑스포 기념협회가 기념관, 체육시설, 놀이시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88년 호주 브리즈번 엑스포 시설도 현재 휴양공원으로 변신했다.

74년 미국 스포케인 엑스포와 82년 미국 낙스빌 엑스포는 전 지역을 민간에 매각해 상업지역이나 주거지역으로 개발한 사례다. 86년 캐나다 밴쿠버 엑스포는 21만평 중 3,000평만 보존해 비영리 과학진흥재단인 과학세계협회가 사이언스월드를 지어 사용하고 나머지는 상업주택지역으로 개발했다.

대전 엑스포보다 한해 빠른 92년 열린 스페인 세비아 엑스포는 다양한 활용 방안으로 유명하다. 65만평 중 17만평은 기업 임대 테마파크, 13만평은 기념지역 조성, 35만평은 연구소 기업체가 들어선 첨단 연구단지 등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테마파크가 관람객 부족으로 공원 운영이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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