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국내외적으로 경제여건은 매우 나쁘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울 때가 호황일 때 보다 개혁하기가 더 쉬울 수 있다.노무현 정부는 경제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개혁적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첫걸음을 시작하면서도 정작 과제가 많은 경제 부문에 있어서는 소위 안정형 인사라는 원칙 하에 관료 출신들을 대거 각료에 임명하였다. 이들이 개혁성에 현저하게 문제가 되는 인사들은 아니지만 관료 출신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지나친 안정위주의 운용으로 경제구조에 대한 원칙적인 개혁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지난 정부가 도입한 다양한 하드웨어적 시스템의 작동을 감시할 수 있는 시장감독기관의 정상화만 이루어진다면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각 이후 금융감독위원장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장 등 임기직 공직자의 경우 본인 스스로가 그만두거나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임기를 존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임기직 공직자의 경우 그 임기를 존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지속적인 개혁추진, 재벌· 금융개혁의 중요성, 그리고 현 금감위원장과 공정위원장의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임기존중 원칙만이 최우선적 판단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며 개혁적 인사로의 새로운 선임 또한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경제개혁은 환란 초기 강도 높은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어 우리 경제구조를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대우그룹 처리와 현대그룹 처리, 은행과 투신사 처리,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과 보증보험사의 처리 등은 기관간의 형평성을 훼손했으며, 대우회사채 처리, 투신사 및 신협의 예금보호적용 등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원칙을 어겼다.
또한 신용카드사의 약탈적 대출과 불법적 마케팅, 벤처게이트와 주가조작에 대한 감독의 문제점, 한빛은행 관악지점의 정치적 불법대출의 문제점, 현대전자 주가 조작사건,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의혹 등은 시장에서의 건전성 감독원칙을 훼손했다. 대한생명매각 절차의 부당성, 삼성생명의 가입자에 대한 불법적인 계약전환, 회사채신속인수제의 문제점,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의 관치 역시 책임성의 원칙을 훼손하였다.
시장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상당부분 건전하고 공정한 감독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있으며, 이는 금감위와 공정위가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특히 최근 불거진 SK그룹의 부당내부거래와 분식회계 혐의 등 재벌기업들의 불법행위, 삼성생명의 불법적인 계약전환에 대한 조사축소 의혹, 한화그룹 분식회계에 대한 미온적인 행정제재,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과정에서 법규위반에 대한 뒤늦은 조사 등은 금감위가 그동안 제 역할을 다해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외에도 공정위가 재벌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대한 물리적 방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점, 언론사에 부과했던 과징금을 취소했던 점 등도 '경제검찰'로서의 공정위가 제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게 하는 점이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두 기관의 역할을 충분히 인식하고 원칙대로 엄정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개혁적 인사를 위원장에 선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이것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노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 때 약속했던 재벌· 금융 개혁들은 대단히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임기 초 1년 안에 개혁작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개혁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권 영 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