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신은 죽었는가!'라는 외침이 신음처럼 입 밖으로 나오더군요." 23년째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변종곤(55)씨는 9·11 테러가 있던 날 강 건너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도했다. 건물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떨어져 내리는 남녀 한 쌍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뇌리에 오래 남은 잔영을 붙잡고 작업에 몰두했다. 그 작품들 30여점을 갖고 귀국해 4∼27일 박여숙화랑에서 6년 만에 국내 개인전 "Is God Dead?"를 연다.
그는 작품의 소재를 벼룩시장, 고물상은 물론 쓰레기장에서도 얻는다. 거기에서 구한 낡은 액자, 전화기, 불상, 액세서리 등 갖가지 물건을 오브제로 삼아 그 위에 극사실적 그림을 그린다. 이른바 아상블라지(assemblage)다.
그는 1981년 미국으로 갔다. 1978년 폐쇄된 주한미군 비행장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제1회 동아미술상 대상을 받고 등단했다. "당시 정치상황 때문에 기관원의 미행을 당하고 시달리다가 붓 몇 자루 등 화구만 챙겨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갔다"고 그는 말했다. 비싼 그림 재료를 살 수 없어 자연스럽게 아상블라지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흐르면서 인정받은 그의 작업은 뉴욕타임스의 1면 기사로 장식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 작품은 대부분 소비·향락 사회의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는 것이다. 온 몸에 아홉 개의 열쇠를 매단 채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형상은 자본주의 체제에 속박된 우리 모습이다. 활짝 웃고 있는 마릴린 먼로의 목에는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상이 목걸이로 걸려 있다. 조선시대 왕비가 샤넬5 향수를 들고 있는 합성사진도 있고, 십자가 상과 인간의 머리 해부도가 한 작품에 들어 있는 등 작가의 생각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오브제의 충돌을 통해 드러난다.
"신은 죽었는가!"라는 그의 외침은 신부와 수녀가 키스하는 베네통 광고사진을 철길을 배경으로 그대로 옮겨 그린 작품에서 다시 들리는 듯하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라는 화려한 문명의 상징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리는 것을 목격한 심리적 여파가 담겨있는 셈이다. "뉴욕 최고의 디스코텍인 '라임 라이트'가 원래 성당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걸 알고 다시 한번 놀랐다"는 변씨는 "이질적 문명과 인종이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현장, 거기서 사귄 친구들(그는 동성애자의 예술적 섬세성을 특히 강조했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한 달간 한국에 머물 예정인 그는 "우리 벼룩시장에서 엄청난 작업 재료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전시 문의 (02)549―7574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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