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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아트/진정한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수 없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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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아트/진정한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수 없는 아픔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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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풍경, 전시회 감상과 작품에 얽힌 사연, 화단 화제 등 미술 동네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서양화가 도윤희, pkm갤러리 대표 박경미, 소설가 마르시아스 심, 사진작가 강홍구씨가 번갈아 씁니다.

푸른 빛

하루 종일 하늘이 멍 색깔이다. 적시기만 하는 비가 그치지 않는다. 새벽에 비바람이 치더니 초록과 노랑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하늘은 장시간 계속될 어둡고도 느린 푸른 색으로 뒤덮이고, 우주의 고인돌처럼 놓여 있는 거대한 구름덩어리 밑으로, 부드럽다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섬세한 붓 터치 같은 움직임들이 퍼져 있다.

그 터치는 너무나 안정적인 파동으로 끊임없이 반복돼 마치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말더듬이 같다. 그 뒤로 꿀 색의 게으르고 슬픈 줄무늬가 흐른다. 형태와 부피란 하늘의 특권이다. 멋지고도 공포스런 느린 움직임, 배타적이고 자의적 속성을 지닌 것 같은 색의 세계, 그 혼합에는 한계가 없다.

작업실 안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림자 없는 푸른 빛이 꾸준히 비치고 있다. 그 빛은 하늘이 아니라 땅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앞에서 이 세상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푸른 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명백한 것들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아름다움은(이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까?) 너무 은밀하고 강렬해서 한 순간 피부로 '느! 껴지는'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아무렇게나 다룰 수 없는 이 소중함…. 아름다움은 지식과 관계 없는 직관에 의한 반응이다. 사물이나 감정은 그것이 무형의 것과 관계가 깊을수록 그 매력이 더욱 강하고 오래 지속된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속 깊은 곳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더 깊게 그 핵이 느껴진다. 세상의 아름다움. 이것은 어렸을 때 보았던 상냥하고 온화한 색깔들로 언덕과 구름과 꽃들이 그려져 있던 그 책 표지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 수 없는 아픔과 같이 한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릴 적 책 속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움보다는 좀 가혹하다.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깊은 푸른 색 하늘 위로 나른한 동그라미가 퍼지고 있다. 하늘 너머로 수증기 같은 미래를 기다린다.

/도윤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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