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깨끗이' 세탁하고 자료를 없애라." 검찰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SK그룹이 은밀히 보관해 온 비밀문서들을 확보, 이를 바탕으로 최태원(崔泰源) SK(주) 회장을 구속하자 재벌 그룹들이 '자료 파기'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들은 "방심하다간 우리도 언제 어떤 식으로 당할지 모른다"며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중심으로 기업 핵심 관계자들의 컴퓨터를 교체하고, 관련 자료들을 파쇄하고 있다.K그룹 관계자는 3일 "지난달 구조본에서 각 계열사에 비밀공문을 보내 구조본과 관련된 모든 문서를 파기하라고 지시했다"며 "이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H그룹 관계자는 "이미 구조본 관련 문서자료는 파쇄하고 컴퓨터에 보관된 자료는 CD에 옮긴 뒤 삭제했다"고 전했다.
일부 재벌 그룹들은 아예 컴퓨터를 교체하고 직원들에게 "자료 작성시 하드 디스크가 아닌 CD에 보관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검찰이 백업해 놓은 전산자료까지 압수하자,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기업들 가운데는 각종 주요 문서와 자료들을 안전한 '제3의 지역'으로 이동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재벌들이 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자료는 구조본이 보유한 오너 관련 자료. 재벌 총수들은 대부분 계열사의 등기이사가 아닌데도 구조본 등을 통해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이 때문에 재벌 구조본들은 총수들의 경영 간섭이나 법적 과실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없애 위험을 원천 봉쇄하려는 것이다.
/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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