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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허브전쟁]<2>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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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허브전쟁]<2> 말레이시아

입력
200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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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는 21세기의 '뉴 말레이시아'로 거듭나기 위해 시작한 대역사(大役事) 입니다. 10년, 아니 20년을 내다보고 차근차근 이뤄나갈 것입니다"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남서쪽으로 40분 정도 차를 달리면 나타나는 말레이시아의 신천지 사이버자야에서 만난 멀티미디어개발공사(MDC)의 모하메드 아리프 사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불과 7년 전만해도 야자 나무만 무성한 열대 우림지역이었던 사이버자야는 매일 쉴새 없이 오가는 공사용 차량 덕분에 50만평 규모의 첨단 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30% 정도 공정이 진행됐지만, 잘 가꿔진 야자 나무 사이로 곳곳에 휴식 공간이 들어서 있었고, 외국 기업들이 입주한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들은 고급 리조트 처럼 꾸며져 있어 언뜻 보면 마치 남국의 휴양지를 연상케 했다.

전국토를 IT허브로

말레이시아가 아시아의 '정보통신(IT) 허브'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앞으로 20여년간 총 500억 링깃(약 17조5,000억원)의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사이버자야 프로젝트는 동남아의 허브 선두주자 싱가포르마저 긴장시키고 있는 대역사. 이미 노키아, 지멘스, 모토롤라 등 세계 굴지의 다국적기업과 말레이시아 현지 기업 등 832개 기업이 연구개발 수준, 지식노동자 고용여부, 기술 전수 및 발전기여도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입주를 마쳤다.

일단 입주만 하면 저가로 기본적인 인프라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 10년간 세금 면제, 투자금액의 100% 비용 인정, 외국인노동자 무제한 고용, 해외자금 조달의 허용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아리프 사장은 "무엇보다 일관되고 장기적인 경제정책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탄탄한 정치적인 안정이 외국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라며 "사이버자야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전체를 거대한 IT 허브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기업들의 호응도 높아 일본전신전화(NTT)는 최소한의 기반시설이 갖춰지자 곧바로 건물을 짓고 현지법인을 입주시키는 등 사이버자야를 전략적 요충으로 지목, 일본, 미국 등에 이어 대규모 연구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멀티미디어 슈퍼 회랑 건설

말레이시아 IT 허브 구상은 마하티르 총리가 1991년 '비전 2020 계획'을 제시한 것이 기원. 21세기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IT 산업을 육성해야 하며, 그 방법은 해외 기업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마하티르 총리는 '비전 2020 계획'의 실천방안의 하나로 1995년 12월 'MSC' 계획안을 발표했고 이후 수십 차례 미국, 일본, 유럽 등을 돌아다니며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 입주를 권하는 열성을 보였다.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남쪽 세팡 신국제공항에 이르는 길이 50㎞, 폭 15㎞의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회랑(回廊)을 정보화특별구역으로 만든다는 MSC(Multimedia Super Corridor) 계획의 핵심이 바로 사이버자야 건설이다.

IT 허브 건설과 운영을 위한 기반도 나름대로 착실하게 다지고 있다. 우선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99년 말라카에 있는 멀티미디어대학을 사이버자야로 이전시킨 뒤 이곳에 입주한 다국적 기업과 전략적인 산학협력을 맺고 있다. 멀티미디어대학 추아 힌 텍 부총장은 "노키아, NTT 등이 자금지원은 물론, 첨단 연구장비 대여, 교수인력 파견까지 해주고 있다"면서 "덕분에 불과 3년 밖에 안됐지만 세계 40여개국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또 1999년 전자서명법, 컴퓨터범죄방지법, 통신 및 멀티미디어법 등 각종 사이버 관련 법률을 제정, IT 인프라 구축에 앞서 제도적인 정비도 마쳤다. 투자유치의 핵심 부처인 산업개발청(MIDA) 소속 공무원들도 외국기업의 투자절차 및 인·허가를 한번에 신속하게 처리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말레이시아 삼성복합단지의 김종기(金鍾沂) 부사장은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고위 관료가 직접 달려와 해결해줄 만큼 외국기업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리적으로도 동남아의 중심일뿐 아니라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이 섞여 조화롭게 살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다민족·다언어국가라는 특성도 IT 허브 구축에는 유리한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KOTRA 말레이시아 무역관 황의태(黃義泰) 차장은 "외국인으로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는 분위기"라며 "한국이 허브로 성공하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 전체가 외환위기에 놓였을 때 완공한 세팡 공항(연간 여객처리능력 2,540만명, 주간 운항횟수 3,479편 등)과 총연장 830㎞ 를 자랑하는 고속도로 등 동남아 최고 수준의 탄탄한 인프라도 허브로서 성공할 수 있는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무모한 투자라는 내부비판도

하지만 사이버자야의 미래는 아직도 안개 속에 가려져있는 것이 사실. 당초 2003년 예정된 완공 시기가 계속 지연되면서 "지나치게 무모한 프로젝트"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이버자야에 입주한 한 일본계 기업인은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활동이 중요한데 무조건 연구소를 세워야 하는 입주조건이 부담스러운데다 교통, 통신 등이 여전히 불편해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또 아직도 환율변동폭을 통화당국에서 묶어두고 있으며, 자동차나 철강 등 자국이 집중 육성하는 산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보호무역 정책을 펴는 등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은 경제 여건도 뜯어 고쳐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사이버자야 건설의 세부안을 마련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MDC 기획조정실의 치 레옹 완 박사는 "사이버자야 건설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라며 "다소 늦어지더라도 중단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자야(말레이시아)=박천호기자 toto@hk.co.kr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의 신장섭(申璋燮) 교수는 송도 IT 허브의 성공조건을 묻자 "조만간 구성될 허브 추진위원회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각오로 임할 것 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송도 IT 허브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이를 현실화할 추진세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적 사고를 하고 꾸준하게 실천해나가는 의지를 갖는 것이 성패여부를 결정짓는 변수라는 이야기다.

말레이시아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IT 허브 구축을 제시한 마하티르 총리는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해 몸소 뛰는 것으로 유명하다. IBM, 인텔 등 주요 기업의 경우 기업 자체 행사에도 참여할 정도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 삼성복합단지의 김종기(金鍾沂) 부사장은 "각종 행사에서 몇 차례 만났는데, 외국 기업인들이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점이 무엇인지 묻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멀티미디어 대학의 추아 힌 텍 부총장은 "치열한 허브 경쟁에서 말레이시아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은 한번 결정한 정책을 꾸준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추동력"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성공신화의 바탕에도 싱가포르 정부가 있었다. 싱가포르는 외국기업 유치의 일등 공신인 공무원들을 키우기 위해 학점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미리 발탁하고 해외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최고수준의 급여까지 제공한다.

자연스럽게 외국기업 유치 전사로 키워진 공무원들은 투자자 발굴에서 투자상담 투자기업선정, 금융지원 알선 등 설립지원, 근로자 훈련 등 모든 절차를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 부처, 저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로 조직된 임시기구 성격이 강한 그 동안의 국가 프로젝트 위원회로 허브가 추진된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국가적 운명을 좌우할 21세기 생존전략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성공을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결단 못지않게 정권 차원을 뛰어넘어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꾸준하게 일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한다.

신장섭 교수는 "지식과 소신으로 무장된 전문가들이 모여서 승패를 걸어야 한다"면서 "이것이 힘들 경우 아예 경험 많은 외국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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