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차관으로 발탁된 유보선(兪普善·육사24기) 차관은 29년간 군 생활 중 유난히 심한 부침을 겪었다. 그의 역정은 군사정권 시절 군의 대표적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인데서 비롯됐다.1991년 45세의 나이로 별을 달 때까지만 해도 유 차관은 동기 중 늘 선두 주자였다. 준장 초기 그가 맡았던 보직은 연합사 작전처장, 합참 작전차장 등 핵심 요직.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련은 시작됐다. 그는 하나회 척결에 나선 YS 정부의 '숙정바람'에 휩쓸려 93년 7월 6군단 참모장으로 전출됐고 이어 국방대학원 교수부장 등 한직을 떠돌았다. 하나회 선별 구제조치에 따라 95년 가까스로 소장으로 진급했으나 결국 사단장을 맡는 데 실패하고 97년 11월30일 군복을 벗었다.
유 차관의 인생 부침은 권영해(權寧海) 전 국방 장관과 대비된다. 소장 예편, 국방부 기획관리실장과 차관을 거쳤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지만 성장 배경은 정반대. 권 전 장관은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 비 하나회 출신이어서 홀대를 받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군 개혁의 지휘봉을 잡아 승승장구한 반면 유 차관은 당시 개혁 대상으로 전락했다.
유 차관의 오뚝이 같은 재기는 타고난 성실성과 모나지 않은 인품 때문이라는 게 중론. 군 관계자는 "유 차관은 자신의 공을 부하에게 돌리는 인품이 뛰어난 장군"이라며 "원성의 대상이었던 하나회 멤버였지만 주위에 적이 없고 능력도 뛰어났다"고 전했다. 유 차관은 이 같은 군내 평가를 등에 업고 2001년 5월 야인생활 4년 만에 국방부 기획관리실장으로 돌아왔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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