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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13> 김추자, 대타에서 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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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13> 김추자, 대타에서 스타로

입력
200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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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많았던 가수 김추자를 어찌 잊으랴. 한국적 록과 쇼 비즈니스의 영욕을 고스란히 함께 맛 본 김추자를 1982년 이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최근 나와 일체 상의도 없이, 내 곡들을 중심으로 리메이크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나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음악을 들어보니 옛날의 그 빛났던 보컬이 퇴색된 듯 해서 안타까울 뿐이다.김추자와의 첫 만남은 무덤덤했다. '펄'의 히트 이후 미 8군 내 나의 사무실 유니버살에는 재기발랄한 여가수들이 줄줄이 몰려 왔다. 남편과 함께 찾아 와 내 곡을 받겠다고 한 김상희가 '어떻게 해' 등을 연습하고 있던 69년 어느 날이었다. 안 그래도 가수 지망생들이 줄을 잇는 판에, 나는 동국대 2학년생이 찾아 왔다는 말을 듣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일단 음반 제작 작업에 들어가면 딴 일에는 아예 무심한 편이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편곡을 해 밴드에게 악보를 나눠 주고 연습을 시켜야 했던 일상 역시 변함 없이 바빴다.

김추자는 거의 매일 와서 길게 목을 빼고 내가 한 번이라도 봐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한달여, 통기타 반주로 직접 테스트를 해 봤다. '펄'의 '님아'를 첫 곡으로 선택했는데, 너무 긴장했던 탓에 박자를 까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몇 곡 해 보니 탄탄한 목소리가 살아 오는 것이었다. 특히 트로트 풍이 아닌 현대적 감각이 몸에 배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 후 그녀는 매일 오후 어김 없이 나타나 트레이닝을 기다렸다.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한 구절씩 불러 가는 식이었다.

그 다음엔 곡을 하나씩 써 주기로 했다. 첫 곡 '늦기 전에'를 신호로 해 '나뭇잎 떨어져', '월남에서 돌아 온 김상사' 등이 뒤를 이었다. 나는 김추자라는 보석을 통해 한국적 록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늦기 전에'를 한번 보자. 경쾌한 소울을 구사해 오던 김추자가 뒷 부분에서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꿔 우리 타령조로 나간 사실을 일부 팬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게 국내 대중 음악계에서 처음 도입해 본 판소리 창법이다. 하여튼 그 곡은 71년 1월 노래책 '대중가요 제 49집'에서 70년도 가요 추천 1위로 선정됐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옛 것만을 답습하는 현실 앞에서 혁신적 시도는 외면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나뭇잎 떨어져', '가버린 사람아' 등 함께 발표했던 곡들 모두 그때 선조차 보이지 못 했다. 현실에서의 통로라면 방송이 유일한 때였는데 방송에서 아예 틀어주지 조차 않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미 8군 일 때문에 눈코 뜰새없이 바빴고, 김추자는 새파란 초년병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 지 몰랐다. 그렇게 1년을 허송하고 나니 전혀 예기치 못했던 데서 돌파구가 생겼다.

동양 TV가 70년 '님은 먼 곳에'라는 새 연속극을 기획하면서 그 주제가 작곡을 내게 맡긴 것이다. 그러나 어이 없게도 방영 이틀 전이었다. 밤 새워 곡을 쓴 나는 다음날 오후 2시 악보를 들고 방송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첫 회 방송이 그 다음날 저녁이었다.

PD가 주문할 때는 미8군 시절부터 알고 있던 패티김이 노래를 부르기로 돼 있다고 해서 거기에 맞게 작곡했던 것인데, 녹음 시간이 돼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간에 연락이 잘못돼 패티김은 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중이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다급해진 담당 PD는 "오늘 중으로 주제가를 녹음하지 못 하면 내 목이 잘린다"며 대타로 할 신인 가수라도 찾아 오라고 매달렸다. 나는 사무실 직원을 다 풀어 김추자 긴급 수배령을 내렸다. 천행으로 그날 저녁 찾아 낸 김추자를 방송국으로 데려가 밤새 연습시켰다.

그렇게 방송을 탄 곡이 선풍적 인기를 끌어 김추자는 일약 스타로 도약했다. 당시 그룹 '퀘션즈'와의 시민회관 공연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내게 '님은 먼 곳에'는 나를 대중적으로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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