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왜곡한 서울의 옛 지명 찾기 작업이 펼쳐진다.서울시는 3일 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지명의 유래와 변천과정 등에 관한 자료집을 자치구 등에 배포하고 지명 변경을 유도하기로 했다. 변경 검토 대상은 동명, 자연명, 가로명 등 72건.
종로구 원남동(苑南洞)은 원래 순라동(巡?洞) 등으로 불렀으나 1911년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한 뒤 창경궁의 남쪽에 있다는 이유로 동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시대 의료기관 제생원이 있다 해서 이름이 정해진 종로구 제생동(濟生洞)은 계생동(桂生洞)으로 불리다 발음이 기생동(妓生洞)과 비슷하다 해 1914년 '생(生)'자를 빼고 원래 의미와 무관한 계동(桂洞)이 됐다.
종로(鍾路)는 종루(鐘樓)가 있던 거리에서 연원한 이름으로 종로(鐘路)로 표기해야 옳은 데도 일제가 1943년 6월 구제(∝?를 실시하면서 민족정기를 왜곡, 축소하고자 '쇠북 鐘' 대신 '술잔 鍾'으로 표기했다.
중랑천(中浪川)은 부분 이름이 전체 이름을 대신한 사례. 원래 조선시대에는 한내(큰물, 漢川)로 불렀는데 일제때 한내 중간의 나루목 중랑포(中浪浦), 중량포(中梁浦)를 강 전체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북창동(北倉洞)처럼 해방 후 일본식 이름을 한국식으로 고치면서 왜곡된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선혜청 창고의 북쪽을 북미창(北米倉)이라 했고 일제 때는 이를 북미창정(北米倉町)으로 불렀는데 해방 후 '미(米)'자가 누락돼 북창동으로 바뀌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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