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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호텔로 찾아온 5人의 北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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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호텔로 찾아온 5人의 北유학생

입력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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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기획실장으로 국가대표 축구팀을 인솔해서 구소련으로 전지훈련을 갔던 1989년으로 기억한다. 하리코프의 한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북한 유학생 5명이 찾아왔다. 현지 언론을 통해 남조선 국가대표 축구팀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망설임 끝에 용기를 냈다는데 그래도 겁이 나는 듯 오랫동안 호텔 앞만 서성거렸던 모양이다. 이상하게 느낀 우리 선수들이 몇 번이나 손짓한 뒤에야 그들은 눈치를 보며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피는 속일 수 없는 법. 체제는 달랐지만 한민족이기에 금방 친해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접촉이 거의 없던 때라 저녁을 먹으면서도 88 올림픽 등 가벼운 얘기로만 대화했다. 우리 선수들은 유니폼, 운동화 등을 선물로 주었고 나도 다음날 축구표를 주면서 꼭 경기를 보러 오라고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날 밤 생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피곤했던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12시가 조금 넘어 누군가 작은 소리로 내 방을 노크하는 것이었다. 난 놀라서 방문을 열지 않고 "누구요?"하고 물었는데 "접네다"라며 속삭이는 북한 사투리가 들렸다. 북한 공안원인 줄 알고 걱정돼 문을 열지 않았더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네다"고 하는 것이었다. 문을 열어줬더니 낮에 온 북한 유학생 중 한 명이었다. 나를 안기부 직원인 줄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남조선 사람들 중 단체를 통솔하는 사람은 모두 안기부 요원인 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남한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달라고 했다. 난 보탬 없이 그대로 얘기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갖고있던 돈(달러)을 몽땅 털어주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는 불가능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6개월쯤 지났을까? 안기부에서 찾길래 의아한 기분으로 찾아 갔더니 바로 그때 그 유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만난 뒤 용기를 얻어 내가 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여비를 마련,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만난 4명 등 모두 5명이었는데 정작 한밤중에 왔던 그 학생은 오지 못했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의 형 아닌 형이자 후견인이 됐다. 하지만 워낙 성실한 친구들이라 하나같이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보란 듯이 성공했다. 전철우는 '고향랭면'으로 사업가가 됐고, 정 현은 우크라이나에서 무역업을, 김지일은 미국에서 컴퓨터 관련사업을, 한성호는 러시아에 가죽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들의 성공은 북한에서의 굶주림과 유학생활의 지긋지긋한 고생,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을 보며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젊은이도 그들처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안종복 전 대우축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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