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민족경제 협력의 첫 관문인 개성 공단이 이르면 3월 중 착공식을 갖고 본격 개발된다. 금강산 관광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적 조치라면, 개성공단 건설은 남과 북이 함께 이익을 나누는 구체적인 첫 사업이다. 한국일보는 개성 공단 및 신시가지 부지, 관광지구로 지정될 개성 시내를 최근 현장 취재했다. 공단 사업을 도맡고 있는 현대아산은 지난달 하순 정몽헌(鄭夢 憲) 회장과 김윤규(金潤圭) 사장이 새로 뚫린 육로로 방북해 북쪽과 사업을 협의했으며 이후 계속 실무자를 보내 착공식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지난달 23일 오전 10시께 개성시 인근 사천교. 평양에서 왕복 4차선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2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이 다리 좌우에는 농한기의 개성 들녘이 넓게 펼쳐져 있다. 사천교는 사천강 위에 걸린 200m 남짓한 다리이다.
사천강은 개성 외곽을 남에서 북으로 흘러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간다. 지금은 건기라 개울 정도에 불과하지만 수량이 좋을 때는 100m 남짓한 강폭 가득히 물이 차서 흐른다. 이곳은 판문점을 불과 1㎞ 앞두고 개성 공단 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공단 부지 조망지이다.
육로는 이어지고 철길 공사가 한창
다리 위에 서서 오른쪽으로(남쪽에서 보면 왼쪽) 수 ㎞ 거리에 나지막한 진봉산과 그 앞으로 봄 농사를 앞두고 있는 빈 논밭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우 몇 마리가 한가롭게 마른 풀을 뜯고 겨울 농한기라 이따금 오가는 농민들만 보이는 이 곳이 착공식과 함께 우선 100만 평, 그리고 전체 400만 평의 개성 공업지구가 조성될 땅이다.
최근까지 황해남도 판문군 봉덕리였지만 공업지구 조성을 위해 아예 판문군을 없애고 개성시로 편입했다. 개성시 당국은 내년까지 1단계 조성을 완료하고, 주변으로 공단을 넓히면서 농가 등 3,000여 세대를 이주시킬 계획이다.
다리 왼쪽인 북쪽은 상업·생활 지구가 된다. 개성시 덕암동, 은덕동을 포함해 600만 평에 이르는 이곳 역시 지금은 낮은 언덕과 논밭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하지만 몇 년 후에는 호텔, 비즈니스 센터, 상가 등 근린 상업 시설과 일반 주택, 아파트 등이 들어서 신도시로 탈바꿈한다.
공단 조성지 인근은 육로 공사가 완공된 데 이어 철로 공사가 한창이다. 끊어진 경의선(북쪽 이름은 서해선)을 잇는 노반 공사가 끝나고 지금 자갈을 까는 중이다. 멀리서 보아도 허연 흙으로 길을 낸 새 철길 자리가 또렷하다. 이 길이 이어지면 사람이나 화물을 실은 기차는 판문점 인수역에서 통관 절차를 거친 뒤 공단 근처 순하역에 처음으로 정차하게 된다. 10여 년 전부터 아예 쓰지 않던 이 역도 화물역으로 쓰기 위해 개·보수에 들어갔다.
북한, 개성공업지구법 완료
착공식과 함께 공표될 북측의 개성공업지구법은 골격이 완성된 상태다. 이른바 경제특구법에 해당할 이 법은 북쪽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법 연구사들이 다른 나라의 사례 등을 참조해 초안을 만들고 이를 현대아산 등이 검토했다. 공단 부지를 소개하기 위해 사천교에 나온 개성시 인민위원회 정영철 대외협력국장은 "현대쪽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북쪽 주민의 90%가 이 법을 만족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 틀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방식으로 개성을 공업, 상업·무역, 관광 중심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토지 50년 임대 자유로운 외화 반출입과 통신 비자 없는 진출입이 가능하다. 정 국장은 "공업지구 입주는 환경이나 민족경제, 주민 건강을 저해하지 않으면 어떤 기업이라도 허용한다"며 "화학이나 경공업, 첨단 산업이 좋겠다"고 말했다.
착공과 함께 해결해야 할 용수·전력 문제도 가닥을 잡았다. 용수는 개성 남쪽으로 20㎞ 떨어진 임진강과 역시 북쪽으로 같은 거리인 예성강을 끌어오는 문제가 함께 검토되고 있다. 현재로는 임진강 물을 쓸 가능성이 높다. 전력은 한국전력이 맡기로 했는데 일단 남쪽 전기를 끌어와 충당하고 장기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해 자체 생산할 계획이다.
기대에 부푼 개성 시민들
공단 입주 업체는 북쪽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최대 16만 명의 고용 효과가 발생할 전망이다. 취재진이 개성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전반적인 경제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 눈에 읽을 수 있었다.
개성은 분위기가 평양과 사뭇 다르다. 기자를 태운 방북단 버스가 시가지로 들어서자 시민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버스를 쳐다보았다. 공산품 직매점에 모였던 사람들 십 수명은 구경이라도 난 듯이 우르르 창가로 모였고, 길에서 놀던 꼬마들과 10대 소녀들은 한결같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적지 않은 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개성민속여관촌 기념품 판매소의 한 판매원은 "착공한다고 말만 하고 왜 빨리 안 하느냐"고 오히려 되묻기도 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남쪽 기업인들의 기대도 크다. 대구에서 종업원 200명 정도의 화학섬유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선호(54)씨는 이날 공단 부지를 둘러본 뒤 "인건비가 쌀 것"이라며 "4월 현대아산의 2차 개성 공업지구 부지 분양 때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사진 최종욱기자
■인터뷰/개성 인민위원회 정영철 대외사업국장
개성 공단과 신시가지의 운영·관리는 현대아산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최고 관리자로 이사장을 선임하는 등 남쪽에서 도맡는다. 북한은 중앙에 새로 만든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서 공단 운영과 관련한 기본 방향을 정하고, 개성시 지도총국에서 현대와의 협조 등 실무를 총괄한다. 개성시 인민위원회 정영철(44·사진) 대외사업 국장을 만나 준비 현황과 개성 분위기 등을 들었다.
―착공을 앞둔 개성 시민들의 반응은.
"민족 경제에 이바지할 공업지구 수립은 북남 화해와 협력을 공고히 해 결국 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늘 말로만 하던 통일을 눈 앞에 보는 듯하다며 기뻐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득에 대한 기대는.
"자연 재해에다 미국의 계속적인 경제 제재 등으로 북쪽 경제에 난관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경제개혁 조치 이후 형편이 개선되고 있다. 개성 공업지구 건설은 생활 조건 개선이라는 측면보다는 민족경제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주민들이 크게 환영하고 있다."
―착공식은 언제 갖나.
"2월 21일 정몽헌 회장 등 현대아산쪽과 한국토지공사 관계자, 남쪽의 통일부· 건설교통부·산업자원부 당국자들이 육로로 와서 개성에서 이종혁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만나 협의를 가졌다. 현대와 우리는 3월 7∼10일께 한다는 데 일치했다. 큰 문제가 없는 한 3월 10일에 착공식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토공에서 1단계 조성 부지 100만 평에 대해 완전한 설계를 마친 후 착공하자며 일정을 늦추자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의선은 언제 연결되나.
"노반 공사가 완공되고 자갈을 깔고 있어서 멀지 않은 시기에 연결될 것으로 본다. 올해 6·15 남북 공동선언 3주년에 맞추어 완공될 수 있을 것이다."
―건설될 신도시에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나.
"북쪽 사람들이 거주하지 못한다는 제약은 없으나 주로 남쪽 기업 관계자들과 외국인들이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 생기는 도시여서 아무래도 물가가 비쌀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북쪽 사람들이 바로 거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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