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를 보기 위해 새벽 4시 기숙사 학생들의 잠을 깨운 교사, 노년을 영재고등학교에 헌신한 80대의 노벨상 수상자, 교수 자리를 박차고 영재고로 온 교사. 세계 곳곳 영재를 키우는 교육현장에선 이 같은 교사들을 만났다. 영재 뒤에는 격려하는 교사가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 하나 하나를 파악했다. 배우는 즐거움 못지않게 가르치는 즐거움에 빠져 있었고, 영재와 함께 하는 도전과 개척에 자신이 더 들떠 보였다.미 일리노이수학과학학교(IMSA)의 한 졸업생은 IMSA의 교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 분야의 모든 걸 알았다. 그들은 우리를 고무시켰다. 뭐든 말해주려 했고, 토론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어디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러시아 콜름모고르프 과학고 세르게이 세르게이에프 교사는 13년째 겸임하던 모스크바대 물리학과 조교수 자리를 최근 아예 포기해 버렸다. "대학생보다는 더 어린 학생들과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그는 요즘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러시아에서 학생들과 함께 웹 사이트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IMSA 조 트레나 교사는 15년간 이 학교에서 일했지만 다른 학교로 갈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일반 학교는 교과목이나 교습방식이 통제돼 있지만 IMSA는 교사에게 전적인 자율과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퍼듀대 영재교육연구소(GERI) 여름학교를 수료한 사샤 반드그리프트(퍼듀대 학생)씨는 여름학교의 상담교사로 돌아왔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름학교 마지막 날 학생들이 온갖 재기를 보여주는 장기 쇼"라며 "GERI에는 창의성이 마를 날이 없다"고 말했다.
미 조지아대 폴 토렌스 명예교수는 "평생 한 명이라도 좋은 스승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부분 이런 교사를 통해서였다. 막연히 문과 적성이라고 여겼던 이경은(미 토마스제퍼슨과학기술고 12학년)양이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 되겠다"고 맘먹은 것은 물리학 교사의 관심 덕분이었다. 러 콜름모고르프고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예브게니군은 대학에서 연구하다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과학고를 찾아 옛 선생님을 만난다. 그는 "지식 그 자체보다 연구하는 자세나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이렇게 학생의 특성을 파악하고 재능을 키우는 교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영재학교들이 전적으로 교사 채용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 교원의 수준을 높이는 첫번째 이유다.
모스크바대에서 운영하는 콜름모고르프, 바우만공대 고등학교는 교사들에게 일반 교수 월급의 3배를 준다. 콜름모고르프 챠쇼브스키 교장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열악한 환경이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최고 대우"라며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자긍심을 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예술과학고 역시 교사의 70%를 박사학위 소지자로 채우기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IMSA는 교사 자격증은 없어도 석사학위를 필수로 요구하며, 보수는 많지 않지만 수업시간이나 행정업무 부담이 적다. 교재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완전히 새로운 교육 실험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와 같은 교사 순환근무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스라엘예술과학고의 경우 한 번 자리잡으면 평생 이 학교에서 영재교육을 맡는다. 반면 교사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 IMSA는 모든 교사와 1∼3년 계약을 맺고 있다.
또한 교사들이 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풍부하다. 미국 대부분 주의 대학들이 석·박사 과정과 연수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연수를 받으면 영재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고 보다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교사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다. 최근 국가적으로 영재교육을 시작한 영국도 이 같은 연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옥스퍼드 브룩스대 영재연구센터 할로위 로위 교수는 "뒤처진 영재교육 시스템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선 교사들에게 투자했다"며 "교사들이 영재 다루는 법을 알아야 제대로 된 영재교육이 실행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영재교사는 영재를 키우는 첫 단추이다. IMSA의 창설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레온 레더만 박사는 "교사들 자신이 과학을 싫어하니까 학생들에게 재미없게 가르치는 것"이라며 "어떻게 가르칠지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김희원기자 hee@hk.co.kr
영국·러시아·이스라엘=정상원기자 ornot@hk.co.kr
■퍼듀대 영재교육硏 시드니 문 소장
퍼듀대 영재교육연구소(Gifted Education Resource Institution) 시드니 문 소장은 학문적 전문성과 가르침에 대한 열정을 영재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초등학교 수준과 중학교 이상 수준으로 나눠볼 때 중학교 이상에선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 문 소장은 "영재들이 자기가 깊이 추구하는 영역에 대해 교사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교사가 영재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로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는 다른 영재 교습법을 훈련해야 한다. 영재들이 얼마나 빨리 배우고, 복잡한 과제를 좋아하며, 관심사가 폭넓게 넘나드는지 등 영재의 특성을 이해한 뒤, 문제해결 중심 학습법, 정보를 취득하는 법 등 다양한 교습법을 개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재를 가르치는 데에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는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고, 복잡한 것을 즐기는 영재에 부응하려면 유연성을 갖고 가르치는 것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초등학교 수준에선 창의성과 열정이 더 강조된다. 문 소장은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들은 배우는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학문적 지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그보다 창의적 환경을 조성하고, 개개인에게 관심을 쏟는 등 열정적인 교습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웨스트 라파예트(미 인디애나주)=김희원기자
■ 영재교사 육성과정
영재를 가르칠 교사들은 특별해야 하나? 영재교육 전문가들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다만 "교육법은 특별히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이 전통 사립명문 중심의 엘리트 교육에서 전국민 대상의 영재교육을 본격화하며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학기 중에는 사흘 코스, 방학이면 1주일 과정으로 진행되는 교사 연수는 문제풀이 위주가 아닌 '영재 학생을 대하는 법'이 중심이다. 특히 연수 과정에서 영재교육센터들이 보유한 방대한 자료 이용법을 주로 가르치고, 학교로 돌아가서도 인터넷을 이용해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계속 데이터를 보강하고 있다.
미국은 대학이 주의 영재교사 자격증제도를 운영하는 등 교사를 배출하고, 꾸준히 재교육하는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재교육 석·박사 과정은 거의 모든 주(40개주)에 걸쳐 127개 대학에 개설돼 있고 25개주는 영재교사 자격증제도를 시행한다. 자격증은 주에 따라 필수이거나 또는 우대 조건이다.
퍼듀대의 경우 석·박사과정과 초·중·고 교사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모두 운영한다. 15학점 과정의 연수를 마친 교사는 인디애나주가 인정하는 영재교사 자격을 갖게 된다. 주로 여름방학을 이용, 영재의 특성, 영재의 판별법과 상담요령, 커리큘럼·프로그램 개발법, 비디오 활용요령 등을 교육받는다. 코네티컷대의 영재교사 양성 워크숍(confratute)에는 매년 여름 700여명의 교사가 참여한다. 주제별 강의와 토론 중심의 열린포럼, 실연 위주의 액션 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수 참가자는 대부분 초등학교 교사에 치중돼 있다.
교수급 인력을 교사진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경우 이공계 석·박사 인력을 일반 교사보다 더 좋은 대우로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 예술과학고 로니 에레즈 교장은 "해당 분야에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사들이 영재 교육에 나서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교사의 전문적 지식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일리노이수학과학학교(IMSA)는 교사를 뽑을 때 자격증은 따지지 않는 대신 석사 학위를 필수로 요구하고 있으며, 박사학위 소지자도 40%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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