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마치고 다시 모인 젊은 대학생들의 생기가 교실을 채우는 개강 첫 수업시간. 어수선한 강의실의 문이 열리고 전기 자전거를 탄 방진복과 방독면 차림의 '아저씨'가 등장,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이 강의는 국민대 조형대학의 교양필수 과목인 '환경 디자인', 방독면을 쓴 괴상한 '아저씨'는 '그린 디자인' 전도사이자 7년째 강의를 이끌어오고 있는 시각디자인과 윤호섭(尹昊燮·59) 교수다.
"머지않아 서울의 대기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면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겠죠.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매학기 전기 자전거를 타고 강의실로 들어섭니다."
'환경 디자인'은 환경 오염에 대해 공학이나 산업 뿐 아니라 디자인이 갖는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 강의다. 윤 교수는 "디자인은 완성품의 모양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설계하고 재료를 선택하며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라며 "이 모든 과정에서 물건이 폐기됐을 때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분해를 위한 디자인(DFD:desigh for disassembly)'의 중요성이 대두된 지 오래다. BMW 등의 유명 자동차 회사가 약 10년 전부터 생산 책임자 뿐 아니라 분해 책임자를 두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윤 교수의 연구실은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시장 그 자체다. 입구에는 각종 상자를 포장하는 노끈들이 일렬로 붙어 있고 방 안은 언뜻 보면 '잡동사니'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벽과 책장은 환경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와 포스터를 비롯한 각종 물품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자세히 보니 방석은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 용지로 죽을 쒀서 굳히거나 버리게 된 널빤지를 붙여 만들었다. 벽에 걸린 티셔츠의 문양은 천연 페인트로 직접 그려 넣은 것이다. 최근 새로 시작한 작업은 '종이 널빤지에 껌 붙이기'. 수천번 씹어도 그대로 남아 있는 껌을 종이에 싸서 버리면 종이가 재활용 될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에 껌을 한 군데 모아 붙여 메시지를 가진 작품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매스컴에 각종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이를 환경이나 디자인과 연결해 생각해 본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해서는 '아무리 규정이 허술했다지만 지하철을 디자인한 사람만이라도 천연 페인트와 불연소 시트를 쓰자고 주장했더라면…'하며 통탄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 많은 폭탄이 터지면 철새들의 이동로가 끊길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며 한숨을 내쉰다.
지난 1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물水전'에 참석해 한잔의 깨끗한 물과 도요새 우표의 이미지 엽서를 배포한 윤 교수는 "오염된 물과 공기로 뒤덮인 세상에서 책상 위에 깨끗한 물 한잔과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섬뜩한 질문과 함께 "디자인을 포함한 모든 활동에서 환경을 우선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도요새를 볼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의 환경에 대한 사랑은 그의 홈페이지 '그린 캔버스(www.greencanvas.com)에서도 만날 수 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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