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고 똥물을 마시란 말입니까." "이제 동강이 아니라 똥강이 됐습니다."지난달 28일 동강 상류인 조양강이 시작되는 강원 정선군 여량리. '아우라지'라 불리며 물 맑기로 소문난 이곳에 '누런 흙탕물'이 송천계곡 쪽에서 철철 흘러 내려왔다. 이곳 주민 홍동주(55)씨는 "지난달 초쯤부터 갑자기 샛노란 물이 쏟아져 내려와 공사를 하나 했는데, 바로 도암댐 똥물이 내려온 것"이라며 "이러다 아우라지 맑은 물도 다 썩어가는 게 아니냐"며 울상을 지었다.
흙탕물로 변해버린 조양강
'골칫덩어리' 도암댐의 썩은 물이 지난달부터 정선 쪽으로 방류되기 시작, 동강과 조양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상수원으로 쓸 수 없는 호소 수질 4급수 수준의 오염된 물이어서 방류하지 못한 채 3개월째 가둬 두기만 했던 도암댐이 만수위까지 물이 차오르자 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이 때문에 조양강이 당장 타격을 받아 최근 수질조사결과 부유물질량을 표시하는 SS 농도가 한달 사이 1.2㎎/ℓ에서 11.4㎎/ℓ로 치솟았다. 아우라지에서는 도암댐에서 흘나오는 누런 송천 물 오른편으로 바닥이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골지천이 합류,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또 물길이 머무른 강 주변 곳곳에는 토사와 나뭇잎, 오폐수 찌꺼기 등 이물질이 쌓여 발목까지 푹푹 빠져들었다. 동강보존본부의 엄삼용(嚴三鎔·38) 사무국장은 "도암댐 물에 실려온 이물질이 이렇게 쌓였다가 여름에 수온이 상승해 썩기 시작하면 악취와 함께 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게 된다"며 우려했다.
골칫덩어리 죽음의 호수
1990년 완공된 강원 평창군 도암댐은 오대산에서 발원, 조양강∼동강으로 이어지는 송천 물을 터널을 통해 강릉 남대천∼동해로 바꾼 유역변경식 수력발전댐. 하지만 동해안 최초의 수력발전 댐이란 거창한 구호가 무색하게 이젠 댐 기능을 잃어버린 채 '죽음의 호수'로 전락했다. 도암댐 건설 후 강릉 남대천이 오염돼 강릉 식수원인 홍제취수장이 아예 폐쇄됐다. 또한 동해 연안 어장까지 피해를 입자 강릉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서 2001년부터 강릉쪽 발전 방류를 중단했다.
도암댐의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2급수와 3급수를 오락가락하는 데다 부영양화의 원인인 질소와 인은 최악의 상태. 지난해 12월 조사에서 총인(T-P)이 0.110㎎/㏄로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5등급 수질을 보였다. 특히 부영양화의 진행으로 아나베나, 마이크로시스틴 등의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보고까지 나온 상태.
도암댐이 이처럼 오염된 것은 상류에 마구 들어선 리조트단지 등 때문. 서재철(徐載哲) 녹색연합 자연보전국장은 "도암댐 인근의 골프장과 스키장에다 대규모 축산단지에서 나오는 분뇨와 오폐수 등 오염원이 밀집돼 있지만 오폐수 처리장 하나 없이 댐이 건설됐다"고 지적했다.
오염물 처리도 난감
강릉 시민들의 반발로 남대천쪽 방류는 못하게 됐지만 피해는 원래 물길인 정선·영월군 주민쪽으로 돌아온 처지다. 이 때문에 강릉과 정선 영월간에 미묘한 신경전마저 벌어지고 있다. 정선 주민 정규화(鄭奎和·58)씨는 "지난해에도 루사 태풍 때 도암댐이 물을 한꺼번에 방류해 수해가 더욱 컸고, 악취로 동강이 엉망이 됐다"며 "정선 영월쪽 사람들을 '물'로 보고 이쪽으로만 내려 보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동강은 한강과 연결되는데다, 강릉과 달리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직접 이용되는데 이런 똥물을 먹으란 말이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강릉 쪽은 "원래 우리 물도 아닌데 왜 우리가 뒤집어 써야 하냐"며 반발하는 상태.
강릉이나 정선 영월 쪽 모두 댐 해체를 원하기는 마찬가지만 이미 썩어 고여버린 물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난제다. 엄삼용 사무국장은 "지금 흘러나오는 물보다 댐 밑에 몇 년간 고여서 가라앉아 있는 썩은 물이 더 큰 문제"라며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 무턱대고 지은 댐으로 생태계 보전지역인 동강 생태계 전체가 위태롭게 됐다"고 말했다.
/정선·영월=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