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첫 내각이 출범했다. 장관인선 과정에서 인터넷 공모, 추천위원회의 추천,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한 인물검증 작업 등 다단계의 절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인터넷 공모의 효과나 후보들의 검증과정에서 여론재판 등의 문제점도 나타났지만 그래도 참여정부의 특성에 걸맞게 공개적이고 투명한 모습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전의 정부에서 밀실인선으로 여론의 검증을 받지 못해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낙마하는 국정의 비효율도 줄어들었다. 대통령이 2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며 일일이 장관선정의 배경을 설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새 내각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고, 북핵 문제 등 대외관계를 원만히 해결하여 국민의 위기의식을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 내각은 21세기 첫 선거에 의해 등장한 젊고 개혁적인 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어 한국의 미래를 밝히는 행정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이번 조각의 파격성은 자칫 '실험적 내각'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 물론 노 대통령은 파격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파격적 인사를 기용하는 것만으로 기존 관료제 및 정책운영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개혁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장관에게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하는 행정능력과 해당분야의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는 전문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파격적 인사는 제한된 분야의 전문성과 개혁에는 유리할 지 모르지만 조직을 장악하고 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새로 장관에 취임하면 크게 두 가지 집단에 의해 포획(capture)되기 쉽다고 한다. 하나는 관료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집단이다. 부처의 특성을 잘 모르는 장관은 관료들에 의해 이리 저리 끌려 다니다가 정책운영 비전이나 철학마저 기존 분위기에 동화되기 쉽다. 또한 자신과 가까운 이익집단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주장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정책운영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여 국정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개혁이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고 있다. 1960년대 미국 국무부가 내부 인사과정이 아홉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어 너무 복잡하고 중첩적이라고 해서 이를 네 단계로 줄이는 인사 시스템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의 축소는 국장이나 차관보에게 인사관련 업무가 집중되는 심각한 운영상의 비효율을 빚어 결국 인사 단계를 원래대로 환원해야 했다. 지난 정부의 의약분업, 햇볕정책 등은 모두 개혁적이고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설계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해서 오히려 추진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개혁성이 강한 리더들은 무리한 개혁추진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답답해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감성이 앞선 개혁에 불과하다. 개혁은 이해관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작업이기에 이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힘이나 감정으로 기존 이해를 붕괴시키면 반드시 이에 대항하는 논리와 힘이 조직된다. 따라서 개혁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설득 논리를 개발하여 체계적인 설계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새 내각은 이제 새로운 스타일의 행정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냉철하고 이성적인 정책설계를 통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21세기 한국 국정운영의 미래는 개혁적인 새 내각의 첫 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염 재 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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