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영변 5㎿ 원자로의 재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한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던 한반도의 핵 위기지수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정부는 아직 최종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일단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여 재가동이 시작됐을 개연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흑연감속로의 가동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봉인해제와 사찰단 추방 이후 상당기간 예정된 조치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미 지난해 12월12일 담화에서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 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정부의 관심의 초점은 현시점에서 북한이 '핵 위협'을 다시 시작한 배경에 있다. 이같은 조치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취임 직후 이뤄졌다는 점도 궁금증을 부르는 대목이다.
취임축하 사절로 방한한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북한이 원자로나 핵재처리시설의 재가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외신이 사실이라면 26일부터 원자로 재가동은 돌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당국자도 "영변 원자로 재가동은 이미 시간문제로 예견돼 왔던 것이나 왜 이 시점인지에 대해선 좀 더 분석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북핵문제 처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안보리의 대북대응수위도 예상보다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5㎿ 원자로의 가동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의 재가동도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조치일 수도 있다.
핵재처리 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핵무기프로그램의 가동, 즉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북한이 이 같은 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향후 미국의 대북대응기조가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 미국 반응
미국 정부는 북한의 원자로 재가동 소식을 확인하면서 북한의 이번 조치를 '도발'로 간주했다. 이 같은 용어의 선택에는 북한의 조치가 미국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선에 점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 정부가 북미 직접 대화를 위한 압력 수단으로 북한이 취할 다음 단계 조치가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이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핵 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 연료봉 생산으로 이어질 원자로 재가동이 현실화함으로써 미국의 외교적 해결 노력은 더욱 꼬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미국의 공식 입장을 발표한 션 매코맥 미 국가안보회의(NSC)대변인과 루 핀터 국무부 부대변인 모두 "우리는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지만 미국의 모든 선택 방안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고 강조, 미국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하지만 당장 미국이 현재의 정책 기조를 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이 재가동한 원자로에서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폐연료봉을 확보하기까지는 1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때문에 현단계에서 미국이 즉각적으로 군사적 대응 카드를 커낼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핵 재처리 시설을 가동하는 경우이다. 북한이 보관중인 폐 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할 경우 6개월 내에 5,6개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제조할 수 있다는 게 미 정보기관의 판단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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