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와 소비 침체, 유가상승과 반도체가격 하락 등으로 삼성전자·국민은행 등 주요 기업들에 대한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 추정치가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올해 장사를 해서 벌어들일 수익 전망을 그만큼 어둡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 전쟁과 북핵 위기 등 요즘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위험요인)'가 조만간 해소되더라도 주가의 가장 기본적인 변수인 기업 실적과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을 감안하면 증시의 추세적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26일 증시에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올해 실적 전망치 하향 조정이 잇따랐다. 현대증권은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액을 그동안 45조4,120억원으로 예상했으나 이날 추정치를 44조2,710억원으로 2.5% 낮췄다. 영업이익은 6조2,490억원으로 12.8%나 하향 조정했고, 순이익 추정치도 5조9,500억원으로 10.6% 줄여 잡았다.
이 같은 실적 추정치는 지난해 실적에 비해 매출액은 9.3% 늘어난 것이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3.8%와 15.6%나 격감한 것이다. 우동제 애널리스트는 "휴대폰 사업부문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D램 현물가격 폭락 등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올해 많은 이익을 내기가 그만큼 어렵게 됐다"며 "1분기 실적 조정폭은 미미하지만 2분기 이후 전망치에 대한 하향 조정 폭은 10%를 넘는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도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을 지난해보다 약 9% 감소한 6조5,550억원으로 예상하며 기존 전망치를 15%나 하향 조정했다. 올 수익 전망 하락 우려는 금융업 대표주자인 국민은행에도 이어졌다. LG투자증권은 이날 국민은행의 올해 순이익 추정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준재 연구원은 "국민은행의 올 추정 순이익을 1조8,418억원에서 1조7,172억원으로 6.8% 내렸다"며 "국민카드의 순손실 추정치가 1,003억원에서 2,857억원으로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민은행의 올 1분기 실적 개선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컸지만 신용카드 부문 손실부담이 지속되고 있어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 관련 데이터베이스 업체인 에프앤가이드가 KOSPI 100 및 코스닥 50 지수에 편입된 146개 기업에 대한 증권사들의 2003년 실적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6월 이들 기업의 매출을 약 498조원으로 내다봤지만 올 2월에는 474조원으로 낮춰 잡았다. 또 지난해 6월 61조원에 이르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도 올 2월에는 49조원으로 줄였다.
동원증권이 기업 분석 대상(유니버스) 17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2월 들어 17개 사의 2003년 추정 주당 순이익(EPS)이 상향 조정된 반면 2배 가까운 31개사는 하향 조정됐다.
이 같은 실적 증가세 둔화현상은 세계적인 설비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으로 한국 기업들이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저(低)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우리 기업들이 저평가돼있고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주가가 부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기업들이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고 이익을 내기가 갈수록 어려운 환경이 돼가고 있다"며 "대내외 경기 여건이 좋아져 기업들의 영업 실적이 다시 증가하고 애널리스트들이 수익 전망을 다시 높여 잡기 시작해야 증시가 침체를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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